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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17. 2019

서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일까

우물 안의 개구리는 행복하다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틀은 제주에 온 후로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사막에 나침반 없이 놓였다. 힘들면 그늘을 찾아 쉬고, 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무작정 걸었다. 어디쯤 왔을까. 그토록 찾던 오아시스를 찾았다. 투명한 물을 내려다보니 물에 비친 내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은하수 별 빛 아래 춤을 추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래, 이번 생은 이렇게 사는 거다.

사람들의 인식에는 평균의 삶이 있다. 대학을 졸업해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 그 넓은 삶 안에서도 평균은 계속해서 점쳐진다. 나는 때로 평균 이상이었고 때로는 평균 이하였다. 여덟 살. 교복을 입고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평균 이상을 밟았다. 그때 나는 완벽한 초등학생이었을까? 스무 살. 대학이 아닌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수능을 두 번이나 보고도 지방대를 갔다. 제주대에 입학한 나는 실패한 걸까?


뭐, 남들과 비교한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놈의 평균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평균 이상의 성적표에 안심했고, 20대 초반에 제주에 사는 건 무지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 제주로 갈 때 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지방대 가면 지방에 살더라.”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웠다. 지방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서울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튕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어리석음은 내가 살아온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다.

제주에 오니 실제로 내 생각과 다르게 살고 있었다. 누군들 생각대로 살겠냐만 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빛나는 밤거리에 있어야 할 대학생이 어둠으로 덮인 모래사장을 밟고 있었다. 전시를 보며 문화생활을 누릴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깍두기 조금만 더 주세요.”에 긍정의 표시인 ‘대답 없음’으로 답하는 새로운 문화에 부딪히며 살기에 바빴다. 섬을 밟고 서서 육지에서 왔다고 하면, 육지를 밟고 서서 섬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뒤집어지게 놀랐다. 그들의 반응이 내가 평범한 삶에서 벗어났다는 걸 증명했다.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하되, 서울과 제주 어디서든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대비는 한다.’가 대학생활의 방침이었다. 이것저것 하려 들었는데 경쟁자가 많지 않았다. ‘노오력’이 아닌 ‘노력’만 하더라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가면 사장님은 업무부터 설명했다. 토익 700점에도 샌프란시스코 인턴에 선발되었고, 봉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헛소리에도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나는 학비도, 토익 점수도 연연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편했다.

제주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별 고민 없이 사는 걸 보고 대책이 없다, 한심하다 느낀 적이 있다. 제주로 이주한 서울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들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그들의 삶이 더 삶 다웠다. ‘죽겠다’ 싶으면 쉬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성취를 이뤄냈다. 제주 사람들은 삶에 대한 안정감과 만족감이 높다. 필리핀 바다를 봐도 제주가 더 예쁘다, 서울에 가도 살기에는 제주만 한 곳이 없다고 한다. 제주라는 도시가 좋다는 증명이다. 그들과 있는 나도 마음이 편했다. 하태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제주 사람들이 바깥세상을 보고 통쾌하게 던진 말 같다.

지방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우월하게 바라보는 자격지심.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사실일 것이다. 서울에서의 취직과 정착은 성공으로 연결된다. 인생의 성공은 한강 앞에 있는 걸까. 서울 사람이 된다면 뭐라도 되는 걸까. 물론 서울 생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건 있다. 서울의 인프라다. 공항과 가까운 위치, 여름철 뜨거운 음악 페스티벌, 새로운 시각을 심어줄 독립영화. 혹은 가로수길, 이태원, 홍대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


제주라는 섬은 문화의 불모지다. 서울에 있고 제주에 없는 것만 찾다 보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제주 생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건 따로 있다. 제주에 살면 꽉 막힌 게 아니라 탁 트인 느낌이다. 아침을 아침답게, 밤을 밤답게 보낸다. 어디서든 노을을 보고 별을 본다. 시동을 걸고 도로 위로 올라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여름 퇴근길 바다에 가 수영을 하기도 한다. 이토록 낭만적인 일상이 후퇴하고 실패한 일상일까.

졸업 후 서울과 제주, 어디에 살아야 할까 수 없이 고민했다. 도시와 섬의 삶. 맞는 생활은 사람마다 다르다. 20대 초반. 제주에서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평균은 없었다. 나의 위치는 평균 밖, 나만의 섬에 있다. 나는 30대에도 ‘40대 같은’ 옷을 입을 거고, ‘20대처럼’ 놀 거다. 행복한 바보가 될 거다. 세상 살이 다 다른 법. 네게는 별로인 것이 나에게는 좋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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