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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10. 2019

두려운 그 이름, 서울 사람

야이(이 아이) 어디 사람?

제주 사람에게는 전형적인 질문이 있다. "너 어디 사람?" "고등학교 어디 나완?"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말하면 아나?' 어디를 가나 듣는 출신 학교를 묻는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주는 고등학교가 많지 않다. 한림고, 제주고, 신성여고, 서귀고, 대기고 등. 제주 사람은 모든 학교를 파악하고 있다. 학연-지연으로 맺어진 제주 사회에 내가 낄 자리는 없다. 나는 육지 것. '서울 사람'이다.

서울 사람이 보는 대한민국 지도 - 중앙일보

처음 내가 '도시 아이'가 되었을 때는 짜릿했다. 과 언니가 물었다. "어디 고등학교 나완?" "학교 서울에 있어요." "아 다미 서울 사람이연? 어쩐지 야이(이 아이) 도시 느낌 나멘." 검은색 추리닝 바지에 포틀랜드라 적힌 반팔티를 입은 나에게 도시 느낌이 난다니. 티셔츠에 적힌 'PORTLAND' 때문인가. 도시적이라는 평가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요." 갑자기 옆에 있던 대구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말하는 게 티비에 나오는 아나운서 같다." 와우. 이거 좀 좋은데? 영웅이 된 스파이더맨처럼 들떴다.


그러나 이건 내가 그들과 쉽게 섞일 수 없다는 예고에 불과했다.

제주의 사회생활에서 서울 사람은 종종 불리하다. 제주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더니. 사실이었다. 중학교 동창, 사촌 오빠, 학원, 아르바이트, 동아리.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 겹친다. 서로 아는 지인을 찾아내 친구가 된다. 제주대 학생 회장 선거는 학연, 지연의 표본이다. 입후보자는 모두 제주 출신이다. 자격 조건에 '20년 이상 제주 거주'가 있는 것만 같다. 제주 아이들은 학연, 지연, 친분, 평판에 따라 투표를 한다. 서울 사람인 나는 좋은 타깃이다. 투표권을 가진 기권자로 판단되기 때문일까. 선거철마다 투표를 권유받는다.

어르신과 요리를 하는 봉사활동에 갔다. 음식으로 청년과 어르신이 소통하는 '행복한 밥상'프로그램이었다. 청년은 어르신에게 제주 전통 요리를 배우고, 어르신은 청년이 먹는 피자, 치킨 같은 음식을 접한다. 복지사님은 육지에서 온 학생이 있냐며 '육지 것'이 되는 걸 조심하라고 했다. 과거 제주로 내려온 육지 사람들이 사기를 치고 제주를 어지럽게 만든 아픈 경험이 있단다.


제주 명절 음식을 주제로 꼬치를 만드는 날이었다. 파프리카, 파, 맛살, 고기를 끼워 넣고 있었다. 어르신이 물었다. "어디 사람?" "ㅅ..서귀포요." 어르신은 셋째 딸이 서귀포 동사무소에서 일한다며 서귀여고를 나왔냐고 물었다. "네.. 네. 맞아요. 그런데 할머님 이거 자르시면 꼬치 꽃기 힘들어요! 긴 꼬챙이 다시 갖다 드릴까요?" 어르신이 답했다. "뭐랜 고람 시냐?" 옆에 있던 봉사자가 통역했다. "할망이 이거 잘라부난 꼬치 하기 힘들엉 안돼. 이거. 긴 거 다시 갖다주클." "응. 다 갖고 왐주게." 어르신은 내 표준어를 못 알아듣고 나는 어르신의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대화가 반복되었다. "너는 어째 고라는 게(말하는 게) 서울 사람 닮다(같다)."

맞아요. 전 서울사람이에요

제주 공항 택시 승강장. 기사님이 짐을 실어 주며 묻는다. "학생 어디 사람?" "서울이요." "서울에 좋은 학교 더 많지 않나? 왜 제주까지 학교를 왔대." 서울에 학교를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라고 한 마디면 되는데 빙빙 말을 돌린다. 제주 사 년째. 육십만 제주인 사이에서 서울 사람이 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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