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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12. 2019

마음에 생긴 외롬이 투쟁기

허억! 외롬이가 생겼어!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다섯 가지 감정은 라일리의 기분을 조종한다. 기쁨이, 버럭이, 걱정이, 슬픔이, 소심이다. 라일리가 태어났을 때 기쁨이가 생긴다. 기쁨이는 라일리의 어릴 때부터 함께한다. 그 후로 걱정이, 소심이, 슬픔이가 태어난다. 친구들은 라일리가 우울해지는 슬픔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일리가 자랄수록 슬픔이의 역할은 커진다. 기쁨이는 슬픔이의 역할을 줄여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나에게는 조절되지 않는 외롬이가 하나 있다.

허억! 외롬이가 생겼어!


외롬이가 태어난 해는 내가 여섯 살이 채 되었을 때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 중학생인 언니는 학원에 갔다. 집에는 청소와 반찬을 해주시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녀는 라디오를 듣는 걸 좋아했는데 어린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뛰놀았다. 그래서일까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초,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항상 혼자 먹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나를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언니도 나를 좋아하는 걸 느꼈다. 나는 사랑받고 자랐다. 이때까지 외롬이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스물한 살.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적막감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부터 틀었다. 아무리 TV를 봐도, 휴대폰을 해도, 요리를 해도 외로움은 달래지지 않았다.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다가 "제주도 싫어! 싫어!"를 중얼대다가 서점이 있길래 들어갔다. 책장을 둘러보는데 눈길이 가는 제목이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일 년에 책 한 권 볼까 말까 했던 나는 그 책을 구매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사람을 발전시킨다는 그 책은 바로 인생 책이 되었다. (그간 읽은 책이 몇 안된다.) 그 후로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책을 여러 권 더 읽었다. 그때 나는 유치한 말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난 외로웠다.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기숙사로 들어갈 다짐을 했다. 2학기 성적으로 기숙사 입주생을 뽑아 고작 1학년인 나는 새벽같이 공부를 했다. 성적 발표날 조교 선생님은 나에게 장학금을 받을 정보 입력을 요청했고 내 성적은 4.3 만점에 4.02로 과에서 일등을 했다. 다음 해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 같이 사는 친구가 생겼다.

외롬이 널 당장 처형하겠다


기숙사에 들어가 대구에서 온 친구와 방을 같이 썼다. 집에 돌아오면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고 고민을 나눴다. 언제나 시끌벅적했지만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늦게 들어오거나 혼자인 밤은 창 밖을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 모든 게 무의미한 풍경이었다. 사람과 소란스러워도 소용없다니. 외로움이라는 정신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거지 같은 외로움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요가 학원은 365일 하루에 여덟 번 수업이 있다. 하릴없이 매일 요가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주말에도 요가원으로 갔다. 30분 전에 가 책을 읽다가 수업이 시작하면 운동을 했다. 수리야 나마아스까라, 비라바드라 아사나, 우루드바 다누라아사나 등 요가 동작을 마스터했다. 다섯 명의 요가 선생님의 스타일도 격파하고 플라잉 요가까지 등록했다. 나는 배에 복근 두줄이 있는 요기니가 되었다. 하지만 요가를 끝나고 집에 가는 길마다 다시 외롬이를 만났다.

외롬이 죽이기 피아노 학원

외롬이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북돋았다. 연애를 시작했다. 외로움이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우리는 샴쌍둥이가 아니었다. 항상 붙어 있을 수 없을뿐더러 남자 친구에게 치명적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는 제주 사람이었다. 서귀포 동창 친구들이 있었고 심지어 일요일마다 교회를 갔다. 아무 잘못 없는 그가 미워 집에서 엉엉 울었다. 그러다 그가 겨울에 군대를 갔는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눈물이 났다. 남자 친구로 외로움을 없애는 건 최악의 방법이었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새벽까지 기획서를 쓰고 팀원들과 회의했다. 80명의 대학생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워크숍도 진행했다. 일년간 제주의 어르신, 아이들, 장애인을 만났고 글쓰기도 시작했다. 달콤한 구운몽같았다. 활동이 끝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깨달았다. 모든 건 잠시뿐이다. 원인은 안에 있으니 밖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외로움을 없애려는 일은 이제 그만뒀다.

지긋지긋한 외롬이. 너를 이제 인정하겠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는 슬픔이를 죽이려 한다. 슬픔이를 어둠으로 밀어 넣은 기쁨이는 죄책감에 다시 슬픔이를 구하러 간다. 슬픔도 필요한 감정 중 하나라는 영화의 메시지다.


죽이고 죽이려던 나의 외롬이도 필요한 감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외로움으로 시작했다. 외로움으로 공부를 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외로움으로 요가를 했고 건강해졌다. 외로움으로 남자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했다. 외로움으로 대외활동을 하고 나를 발전시켰다. 이제 그만 외롬이를 인정하고 간직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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