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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Nov 29. 2019

064HZ 제주 교통상황

귀신이 된다면 면허 시험장에 떠돌겠어요

버스와 지하철로 교통에 불편함 없이 20년을 보냈다. 서울 사람에게 제주에서 뚜벅이로 지낸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차로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에 한 시간이 넘게 앉아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돌아가고 서서 가면 억울함은 배가 된다. 제주의 청년들은 면허가 있다. 언제든지 운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대학 3학년, 4학년이 되면 차를 끌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다. 혹은 취직과 동시에 차부터 고른다. 나도 차부터 골랐다. 주변에서 "넌 면허부터 따라"하면 "차 사는 게 어렵지 운전면허 따는 게 어렵냐?"라고 대꾸했다.


스물한 살의 겨울방학. 서울로 돌아왔다. 언니와 창동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증명사진을 찍고, 신체검사를 하고, 필기시험을 봤다. 64점. 합격이다. 운전면허를 딴 것처럼 기뻤다. 시작이 반이라길래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미뤄뒀다. 그러다 보니 학기가 시작되고 제주로 돌아갔다. 제주는 운전면허 시험장이 멀어 가기가 어렵다. 눈 떠보니 2년이 흘렀다. 2년간 운전하는 친구들은 선망이 대상이 되었고 면허를 얼른 따고 싶었다.

스물셋. 필기시험이 만료되었다. 다시 시험에 응시했다. 84점. 필기 합격. 역시 그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이론은 빠삭하다. 기능시험에 바로 도전했다. 출발 전 조작능력부터 다 틀렸다. (1차 탈락) 친구 차로 조작능력과 좌회전, 우회전을 연습했다. 그런데 선을 밟으면 15점씩 감점되더라. (2차 탈락) 선 안 밟기에 혈안이 돼서 선을 밟을 위험상황에 풀어내는 법을 배웠다. 시간이 초과되었다. (3차 탈락) 기능시험에 뭘 이렇게 신중하게 하냐. 감대로 가보자! 했다. 선을 또 밟았다. (4차 탈락) 이쯤 되자 친구가 운전면허계의 위인 차사순 할머니 사연을 나에게 보냈다.


출처 SBS

960번 도전해 운전면허를 취득한 차사순 할머니. 아름다운 도전. 포기하지 않는 노력. 할머니는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현대 자동차가 할머니에게 자동차를 선물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기어를 넣지 않고 후진하려다 감나무에 박아 차가 반쯤 파손되었다. 결국 할머니는 고심 끝에 자동차를 처분했다.


나도 이렇게 되면 어쩌지? 새 차 받고 광고까지 찍었다니 나쁘지 않은데? 면허시험 960번이면 천만 원? 어휴, 차 한 대 값이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사순 할머니의 사연은 남 일이 아니었다. 나도 지금부터 960번 시험 보면 차다미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운전면허 따기는 차 사는 것보다 어려웠다. 운전면허증이 토익 자격증보다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보다 갖고 싶다. 갖게 된다면 주민등록증 대신 들고 다니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액자에 넣어 벽에 못으로 박아둘 거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면허를 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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