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사람들이 사랑하는 근사한 타파스 장소
마드리드에서 가장 부유하고 세련된 지역을 꼽으라면 다들 살라망카(Salamanca)를 말한다. 살라망카가 스페인 서쪽에 위치한 대학도시 이름이기도 한데, 마드리드에도 살라망카라는 지역이 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처럼 핫한 레스토랑이 모여있기도 하고 그 안에 세라노 거리에 가면 하이엔드 브랜드 샵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마드리드의 다른 지역과는 사람들의 옷차림새가 다르기도 하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차려입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화려하지만 연륜이 있어 과하지 않고 편안하고 우아해 보이는 모습.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주중에 거의 누워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말 한 끼 정도는 근사한 곳에서 외식을 하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태교다. 내가 행복해야 뱃속의 아기들도 행복할 테니 말이다. 매일 오는 기회가 아니니 일주일 동안 마드리드에서 핫하다는 곳을 찾아서 엄선해서 간다. 그리고 고른 곳이 La Maruca. 선정기준은 나중에 아기들과 오기 힘든 곳인가? Yes. 그래 그렇다면 지금 가보는 거다. 인터넷으로 예약했고, 전날에 문자로 예약 확정하라고 문자가 온다. 이곳은 살라망카에 위치한 타파스 레스토랑이다. 스페인 사람들도 우리처럼 요리를 시켜서 나누어 먹는다. 그래서 타파스 메뉴에는 Para compartir이라고 쓰인 섹션이 있다. To share 나눠 먹을 수 있는 걸 친절히 알려주는 셈! 각각 한 사람씩 전식 본식 후식을 시키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타파스는 나누어 먹어야 제맛. 여러 타파스를 시켜서 골고루 먹어보기! 게다가 나눠먹기 좋도록 여러 피스가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있다.
스페인의 점심시간은 늦다. 한국의 점심 식사 시간이 보통 1시 전후인 반면에 스페인은 거의 3시 전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레스토랑은 2시부터 예약받는 곳이 많은데 혹시 1시 반 예약이 된다고 해서 예약을 하고 가면 홀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시쯤 도착했나... 맛집답게 벌써 테이블이 거의 꽉 차 있다. 당일 워크인으로 테이블 잡기는 거의 힘들어 보인다.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을 보니 벌써 설렌다.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처럼 30-40대 여자들 넷이 모여 앉아 와인 한잔씩 하며 폭풍 수다를 떨고, 아직 어색하고 수줍어 보이는 커플, 대담한 옷차림의 아주머니들도, 오랜만에 데이트 나오신 건지 아주 잘 차려입으신 중년의 부부도 있는 이곳.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제일 중요하다. 어떤 걸 먹어야 맛있을까나. 이미 식당을 고르는 일주일 사이에 메뉴 공부는 끝낸 상태다. 이곳은 영어 메뉴도 있고 타파스를 한 접시 가득히 아니라 반인분을 시킬 수도 있다. 반인분! 그것도 너무 좋다. 둘이 와도 이것저것 시켜 먹어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와!!!!!!!!!!!!!!!!!!!!!! 음식 맛있다. 식전 빵을 빼고는 다 맛있다. (내가 따뜻한 빵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차가운 사워도우 빵을 내어준다) 스페인이 괜히 미식의 나라가 아닌가 보다. 불향과 발사믹 소스를 입힌 파프리카 구이와 크리미 한 대구살 크로켓. 이 뜨겁고 자그마한 공을 한입에 베어 물면 녹진한 크림이 입안에 퍼진다. 절대 실패할 일 없는 오징어 튀김도 기름기 쫙 빠져서 바삭바삭 맛있으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베리코 돼지구이에 트러플 향이 솔솔 나는 감자 퓌레 그리고 상큼함을 더해주는 플럼 소스와 익숙한 바비큐 소스. 이건 또 먹으러 가고 싶다.
디저트도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곳을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회사 동기들이 생각났다. 누군 이 메뉴를 좋아할 것 같고 누군 분위기를 좋아할 것 같고 떠오르는 얼굴들. 내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여행객은 알기 어려운 좋은 장소를 많이 찾아두고 누군가 놀러 온다면 현지인 맛집으로 안내하고 즐거운 데이트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식만 맛있다고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다. 그 안에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가? 그곳 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나는가? 이게 바로 이 메뉴의 정석이지 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는가? 재료가 싱싱하고 장소가 깨끗한가? 프로다운 종업원이 있는지 여부 까지. 이런 모든 측면에서 봤을 때 이곳은 누구와 와도 좋을 법한 곳이었다. 주말의 특별 데이트 장소를 잘 골랐다는 작은 자부심과 맛있는 새 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은 주말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