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대학생에게 스페인어 과외 받기
스페인에서 생각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자동차에 문제가 있어 렌터가 회사 콜센터로 전화를 했는데 스페인어로 하면 응대를 해주고 영어를 하면 툭 끊어버린다. 또, 폰 요금제와 인터넷을 신청하러 통신사에 갔는데, 세 곳 중 두 곳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영어가 통하는 곳은 스타벅스뿐인 듯했다.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언어를 배워야지. 심지어 집주인 아주머니도 영어를 잘 못하시기 때문에 번역기를 돌려서 의사소통하는 일이 허다했다. 언어를 못하는 건 정말 큰일이다. 어제도 보일러 기사님이 방문해주셨는데, 설명서를 가리키며 아저씨 이거 했고요. 보일러는 불 들어오는데요. 바닥은 차가워요. 이것을 겨우 겨우 말하고 아저씨가 고쳐주길 기다렸다. 아저씨도 손짓 발짓으로 알려주시다가 결국 둘 다 폰 꺼내고 구글 번역기로 필담 시작. 겨우 해결하고 식기 세척기까지 고쳐주셨다. 급한 일은 해결됐지만 스페인어는 얼른 배워야 할 것 같다.
고위험 산모라는 상황 때문에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조금은 몸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과외뿐인 것 같았다. 스페인에도 맘 카페가 있다. 국제결혼으로 이곳에서 살게 되신 분들도 있고, 남편의 회사일로 잠시 나오신 분들도 있고, 이민을 와서 벌써 정착한 분들도 계셨다. 스페인어를 어떻게 배우면 좋을까 생각하다 개인 교습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선생님을 구하려고 카페에 문의를 했더니 선생님 추천 사이트를 소개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입력하면 근처에 있는 선생님을 구해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나의 첫 선생님 마유. 우주 항공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인데, 학교 수업도 듣고, 인턴도 하고 용돈벌이로 과외도 한단다. 금토일 주말 수업도 본인은 괜찮다며 언제든 수업하고 싶을 때 알려달라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뻐서 일주일에 두 번 과외받기로 했다. 조곤 조곤 설명해주는 말투가 너무 좋다. 은행에 볼일 보러 가기 전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연습시켜주고, 슈퍼에서 매일 듣는 말도 설명해주신다. 과외를 받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또 난 자꾸 영어로 라도 말하고 싶은데 꿋꿋하게 스페인어로 웃으면서 대답해준다. 90분 수업은 무리라 60분 수업을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공부라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자꾸 잘한다 잘한다 라고 해주니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다. 선생님과 계속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취업 준비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슬펐다. 그래도 책임감이 강한 선생님이라 본인 친구를 새로운 선생님으로 소개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만난 나의 두 번째 선생님 에바. 미모를 자랑하는 법대생. 마드리드 토박이 우리 선생님. 스페인 사람에 대해 듣던 바와 다르게 오후 5시 수업 시간이면 딱 1분 전에 우리 아파트 정문 벨이 울리고 5시에 정확하게 우리 집에 도착해서 수업을 시작한다. 한 번도 늦은 적이 없고 까먹은 적도 없다. 선생님과 수업이라는 게 도란도란 대화를 하거나 글을 읽고 설명해 주는 수준이라 단기간에 스페인어 실력을 확 향상하는 게 목표라기보다 언어 톤에 익숙해지고 마드리드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느낌인데 나에겐 너무 도움이 되었다. 전형적인 마 드릴 레뇨(마드리드 여자) 악센트를 가진 선생님인데, 나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늘 응원해준다. 집콕 임산부 시절 거의 유일하게 만난 스페인 사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누구보다 같이 기뻐해 주고 인형 두 개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해주었던 따뜻한 선생님. 이런 선생님을 만나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렇게 스페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