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나라에서 산모식 경험하기

스페인 병원 밥 구경해보실래요?

by 마리롱

스페인에서의 쌍둥이 출산은 그 모든 것이 스파르타 식이었다.

수술 당일에 병원에 가서 아이들을 낳고, 1시간 인가 두 시간 후에 산모가 깨어나는 대로 회복실에서 아이들을 안겨준다. 그리고 곧바로 젖을 물리라고 하는 것도 포인트. 게다가 두 명을 동시에 말이다. 비몽사몽 모든 일이 후다닥 지나갔지만 마취를 했어도 온 몸이 아프게 느껴졌다. 수술로 아이를 낳았으니 사실 배를 가른 셈인데 당일 저녁에 일어나 걸으라고 하는 것도 나에겐 충격이었다. 아픈데 진짜 저 걸을 수 있어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에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힘든 경험이었다. 작은 방에서 24시간 함께 보내는 아이 둘과 신랑 그리고 나. 첫 육아는 서투를 수밖에 없었고. 울면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만 아는 그야말로 초보 엄마 아빠였다.


먹을 것이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봤을 텐데!

그런데 나는 나의 첫 스페인 산모식을 보고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딱딱한 비스킷과 쨈 그리고 티 한잔

출산 당일 첫 식사. 저녁 메뉴. 이것만 먹고 출산 1일 차부터 본격 육아에 돌입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수술을 했으니 간단히 먹어야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소금 간이 없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다음 날은 낫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 잘 먹어야 모유도 나오고 또 힘을 내서 육아를 할 테니까. 또 아이를 낳으면 출산 후에 몸보신도 하고 영양 보충을 해야 앞으로 탈 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산모식이 그런 콘셉트는 아닌가 보다. 미식의 나라 스페인 어디 간 거야?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의 스페인 산모식


특히 충격적이었던 메뉴는 햄 세 조각이나 돼지 껍질 같은 비주얼의 젤리였다. 비위가 약해졌는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영양학적으로는 나름 빠짐없이 준비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간이 안되어 있었고 야채수프를 한 대접씩 주어서 먹는 재미도 맛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 나는 스페인이라서 빠에야라도 챙겨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건 우리 엄마. 스페인에서 출산 후에 산후조리와 육아 지도편달을 부탁드렸는데 아직도 일을 하시는 터라 오실 수 있으실까 했는데, 출산은 중요한 순간이라며 한 걸음에 와주신 고마운 우리 엄마. 입원 기간 동안 보온 도시락에 따끈따끈한 미역국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가져와 주셨다. 호르몬의 영향도 분명 있었겠지만, 몸이 힘들고 너무 고맙고 미역국은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오랜 시간 아이를 기다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동안의 고생이 다 기억났다. 진짜 좋았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먹었다. 먹어야 산다는 마음 가짐 반 그리고 배고파서 반. 진짜 이때 엄마의 미역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육아를 하다가 병원에 있는 삼일 만에 KO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산모식, 우리 엄마표 소고기 미역국

따뜻한 소고기 미역국과 쌀밥


엄마가 미역국만 싸다 주셨을까? 손 크신 우리의 대한민국 어머니들 만세다! 부드러워 먹기 좋은 육전도 가져다주시고!

부기 빠지는데 호박이 좋다며 호박죽도 끓여주시고! 비타민도 섬유질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가져와주신 딸기와 샐러드. 그리고 따뜻한 차와 함께. 아이들도 벌써 낳았는데 식기 전에 따뜻하게 먹으라는 말, 예쁜 걸로 먹으라는 감동적인 멘트까지. 엄마와 나와 내 아이들까지 삼대가 모인 이 방이 음식의 열기로 따뜻해졌다. 밖에서도 음식 냄새를 맡고 배고프다고 누군가 그랬을 것 같다. 평소에 사랑한 다는 말을 하는 엄마도 딸도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사랑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도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겠지 생각하면서. 미역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우리 아기들도 우리 신랑도 좋아한다. 그냥 맛있어서 좋아한 미역국이었는데 이젠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엄마가 선물해준 나의 소울 푸드 미역국. 나도 아이들에게 맛있는 소울 푸드를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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