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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Aug 27. 2020

첫 집의 추억

우리가 집을 사게 된 이유

신혼집은 언덕에 있는 새 아파트 전세였다. 단지는 큰 길가에 가까울수록 평지이고, 평지에 있는 집 평수는 모두 넓었다. 우리 집은 가파른 언덕을 지나 위에 있는 26평의 아담한 아파트였다. 그래도 새 아파트에 처음 살아보는지라 하얀 도화지 같은 느낌이 뭘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예뻤고, 창문을 열면 새소리가 들리고 숲도 보여서 도심 속의 힐링 공간이라며 좋아했다. 게다가 유럽의 오래된 집에서 방을 빌려 살다가 전세든 뭐든 간에 우리 집, 우리만의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우리에게 과분한 공간이라며 좋아했다.


사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기분이 이상했다. 언뜻 보기에도 우리 신랑보다 한참 어린 20대 남성이 집주인. 입주 첫날 키를 같이 받으러 갔는데 자꾸 사람들이 집주인과 세입자를 헷갈려했다. 집주인과 세입자를 바꿔 말하니 집주인도 우리도 민망했다. 집주인은 나보다 어렸는데 그래도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전세 들어와 주어 고맙고 결혼 축하한다고 했다. 집주인은 젠틀맨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잠시 겪은 집주인의 어머니는 아니셨던 것 같다.


그 집에 살던 중에 한 번은 집주인과 여자 친구 그리고 그의 부모님이 서류 처리를 위해 우리 집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집주인이 나중에 살지도 모르는 집이니 부동산에서 만나기보다 집 구경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듯하다. 이 방문에서 보아하니 그 집의 실세는 집주인의 어머니였던 것 같다. 모두가 꼼짝 못 하는 그들의 그녀. 살짝 들어보니 그녀를 통해 부동산으로 재산 증식이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분... 우리 집을 돌아보시더니 이렇게 해두고 사나? 하시는데 뉘앙스가 왜 이렇게 밖에 못해두고 사는지로 들려서 난 조금 속상했다. 옆에서 아저씨가 말리시는데도 무서운 게 없으신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집주인의 직접적인 해코지를 당한 것도 아니고 쫓겨나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그날의 기억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집을 사는 데엔 감성이 작용한다. 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이 되는 느낌이 싫기도 하고. (사실 알고 보면 내 덕분에 집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게는 집에 못 박지 말라니 벽에 더 허전해 보이고 내 집이 생기면 꼭 못을 박으리라 하는 다짐도 괜히 해본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집을 샀던 시기는 미분양이 속출하는 시기였는데도 내 집 하나는 꼭 사야겠다고 느끼게 된 건 첫 집 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부러웠던 '어린' 집주인과 '도도한' 집주인의 어머니 덕분. 물론 부모님들의 걱정 어린 조언도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들었던 해외 사시는 인생 선배님들의 권유도 있었다. 특히 선배님들은... 이제 한국 집값이 너무 올라 돌아가도 살 곳이 없다고 한숨 쉬시던 게 생각난다.


갖고 싶은 집과 가질 수 있는 집의 괴리는 분명 있었고 기다려야 하는지도 고민했지만 결국 정말 재빨리 해버린 결정. 이성보다는 감성에 끌려 저질러 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뒤로 하고 어쨌든 해외에 나와 다시 사는 지금. 집을 사두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 가족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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