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롱 Aug 18. 2020

스페인에서 마제소바 만들어 먹기

멘야하나비 라고 들어보셨어요...?

스트레스를 이기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맛있는 탄수화물을 실컷 먹고 배를 통통 두드리며 쉬는 것이다. 미식의 나라 스페인이라지만 한국에서 먹던 음식이 그리울 때가 많다. 스페인은 의외로 배달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편이어서 Uber eats, Just-Eat, Deliveroo 같은 앱을 이용해서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 피자, 치킨, 햄버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스페인식, 멕시코식, 일식, 중식 등 다양한 배달 음식이 있어서 요리하기 싫을 때 시켜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감자탕이라던지 낙지볶음이라던지 양념 숯불 치킨이라던지, 얼큰~하고 매콤~하고 밥이 무한대로 들어가는 밥도둑 메뉴는 없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무더운 여름이 한창이고 쌍둥이 육아가 지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메뉴는 바로 이것이었다. 마제소바!


이것을 처음 먹은 것도 몇 년 전의 여름이었을 거다. 서울에서 한창 일할 시절. 방이동 뒷골목에 있는 어느 작은 가게 앞에 줄을 길게 섰다. 난 다른 호기심이 없어도 다 맛있다고 하는 건 먹어봐야 하고 특히 줄 서있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이 가게 가 바로 멘야 하나비라는 가게였다. 신랑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신랑에겐 미식가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와 한 시간 줄을 서서 먹었다는 그 가게 구나! 좀처럼 맛있다는 표현은 안 하는 신랑이 맛있으니 한번 같이 가자고 했던 그곳인데 이렇게 실제로 줄을 서서 오래오래 기다리는구나.


하루 날을 잡아 나도 신랑과 줄을 섰다. 너무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주 일찍 와서 기다릴 생각은 못했는데 내 뒤로 몇 명이 줄을 서고는 그 뒷분들은 줄 서기에 실패하셨다. 이러면 자꾸 내 기대감이 증폭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원래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라 맛있다는 것을 먹기 전엔 마음 관리부터 해야 한다. 그냥 후루룩 한 그릇 먹는 면요리일 뿐인데 이게 뭐라고 그리 줄들을 서시나. (그 긴 줄 중간에 서있는 나) 그래도 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꼭 먹어봐야 한다.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지. 정말 기다릴 가치가 있는 맛인지도 궁금했다. 대체 이건 무슨 맛이길래!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가게 문이 드디어 열렸다. 작은 가게지만 나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듯했다. 도착한 순서대로 차례차례 들어가 자판기에서 주문을 했으며 자리로 안내받고 후다닥 먹고 나가는 시스템. 여유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식사 시간. 드디어 내 차례다. 마제 소바! 드디어 만나는 것인가. 마제는 마제루, 섞다는 뜻의 일본어 동사. 소바? 내가 아는 소바보단 우동에 가까운 것 같다. 생파가 잔뜩 올라가 있고 계란 노른자에 양념에 볶은 고기 게다가 다진 마늘까지 들어있는 이 음식. 처음 보는 비주얼에 과연 맛있을까 의아했지만 옆 사람들이 하는 대로 슥삭 슥삭 비벼본다.


한입 먹어본다. 응? 이 맛은 뭐지. 처음 접해보는 이맛. 잘 모르겠어서 한입 더 먹는다. 응? 뭐야? 처음부터 오!!! 진짜 정말 맛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음식이 아니다. 희한하게 자꾸 당긴다. 한입만 더. 한입만 더. 멈출 수 없는 맛. 그러다 한번 멈춰야 한다. 메뉴판에 멈추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앞에 놓인 다시마 식초를 조금 넣고 비벼 보라고 한다. 그래 모르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해야지. 휘리릭 한 바퀴 둘러주었다. 또 비빈다. 그리고 한입 먹는 순간. K.O. 이렇게 맛있는 건 줄 몰랐어. 정말 맛있다. 감칠맛이 살아난다. 다른 메뉴를 또 먹는 맛이다. 그리고 마무리까지 시켜준다. 소스 조금 남은 거에 밥을 조금 비벼 먹으라고 한다. 진짜 배는 부른데 기분이 너무 좋다.


마제 소바의 첫 기억은 그랬다. 그냥 기본 우동도 맛있는 곳을 찾기 힘든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마제소바가 갑자기 생각나다니. 사 먹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꾸만 생각나는 걸 어떡한담. 쫄깃한 면도 먹고 싶고. 결국 나는 면부터 만들어 먹기로 결심을 했다. 어정쩡한 걸 먹으면 어차피 계속 생각이 날 테니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하는 거다. 집에 밀가루와 쯔유와 떡갈비가 있다. 그리고 파와 양파 등은 기본 재료니 당연히 있고. 맛 재현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집에서 시도해보는 사람도 아예 없진 않더라. 처음 먹어봤던 그때와 다르게 마제소바를 파는 식당도 이제는 많이 생겼고, 멘야하나비의 다른 지점도 생겼다.


우동 면부터 뽑았다. 반죽이 단단했지만 인터넷의 후기처럼 지퍼백에 넣고 발로 밟아 반죽을 했다. 발 반죽 후 숙성을 시키니 정말 쫀득쫀득한 면이 완성되었다. 탱탱한 우동면을 먹는 게 얼마만인가 그냥 삶아낸 면만 먹어도 너무 맛있다. 역시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면 맛이 없을 수가 없나 보다. 오래전 먹었던 맛을 되살려 소스를 재현해본다. 쯔유와 고추기름, 마늘이 주 재료다. 고명으로 생 마늘 대신 생양파를 올렸는데 이것도한 자칫 텁텁할 수 있는 이 맛에 상큼함을 더해준다. 멘야 하나비에서는 고등어 가루 등을 쓴다고 했었는데 그건 없어서 묵직한 맛은 고기와 들깨 가루 조금으로 냈다.


아!!! 맛있다!!! 정말 맛있다. 집에서 해서 이런 맛을 낼 수 있을지 몰랐다. 신랑과 내니님과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우리 아기들도 소스 없이 우동 면 한 그릇을 해치웠다. 왜 우리네 어머니들이 칼국수 면을 직접 미시고, 이탈리아 어머니들이 파스타를 손수 뽑아내시는지 알 것 같더라. 수제면은 사랑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만족감을 준다. 사실 한번 해보고 두 번 더 시도해서 세 번이나 해 먹었다. 면을 뽑는 것이 번거로워도 다른 것은 꽤 어렵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에. 처음 다시마 식초 없이 먹고 너무 아쉬워 두 번째부터는 다시마 식초도 만들고 밥을 비벼 먹기 위해 소스도 넉넉히 준비했다.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작가의 이전글 그 시절 하숙집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