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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Dec 24. 2020

올해도 수고했어

코로나로 얼룩진 한 해를 보내며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육아라는 게 익숙해질 리가 없지만 엄마 1년 차와 2년 차의 내공은 다르다고 느꼈다. 엄마 2년 차에 접어든 2020년. 돌 지난 쌍둥이는 점점 소통이 가능해졌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화가 나는지 왜 그러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괴롭다고 느꼈던 육아의 시간이 조금 나아지려나 했을 때쯤,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에 가서 아이들 돌잔치를 치러줘야지 할 때쯤 코로나가 터졌다. 터졌다는 말이 정말 어울린다. 전쟁이 난 것 같았고, 정보를 알아내기에 바빴고, 초조한 마음으로 숨어 기다렸다.


시작된 곳이 중국인 만큼 스페인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락다운이 시작되기 전부터 외출을 자제했다. 나가면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무서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스페인이 더 위험한 곳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가움을 볼인사로 표현하는 유럽 문화와 바이러스의 힘을 무시하고 감행한 행사 덕에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버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니 만큼 경제적으로 망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마드리드-인천 직항은 벌써 없어진 지 오래지만 오가는 하늘 길도 막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도착 72시간 전의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기들이 안타까웠다. 어린이집 가는 것도 미뤘고, 이웃들과의 반가운 만남에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야 하나 멈칫하곤 했다. 쌍둥이라 둘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외동인 아기나 쌍둥이긴 하지만 마음껏 바깥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뛰어다니지 못한 다는 건 불쌍하긴 마찬가지. 창 밖을 열심히 쳐다보다 이웃들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시간이 되면 후다닥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조금이나마 단지 안을 걷게 해 주었다. 그 단조로운 일상 조차 웃음으로 지내주어 고마울 따름.


여름이 얼른 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면 바이러스도 비실비실 맥을 못 출 거라 생각해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럼 동남아에는 어떻게 코로나가 있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구의 자정능력을 기대하며 절로 좋아지길 기도했다. 기온은 점점 높아져갔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던 확진자 수도 함께 늘었다. 신문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 해변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었고, 정말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건 단순한 감기 정도인 것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추수 감사절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보는 건 사치 같았다. 감사보단 억울함이 앞섰으니까. 여지없이 일로 바쁜 남편을 보며 다들 재택근무를 하고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일한다는데 뭐지 하며. 그러나 이내 어리석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길 곳곳에 불이 꺼진 상점에는 폐업 사인이 붙어있다. 사업이 망했다. 이런 위험천만한 순간에 광장에서 데모를 한다. 가게를 못 열게 하는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서 란다. 먹고사는 문제를 건드리면 누구나 화가 나니까.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들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이쯤 되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


투덜투덜하는 것으로도 한해를 가득 채울 수 있을 텐데 불평 금지 기간인 크리스마스가 벌써 다가왔다. 이 한해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나라도 스스로 위로해주고 싶다. 완벽하게 한 것은 하나도 없을지언정. '그래도'라는 말을 모든 토닥임 앞에 붙일지라도. 그래도 어린 두 아기를 기르느라 고생했다고, 그래도 꿋꿋하게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잘했다고, 그래도 가족을 위해 맛있게 밥하려고 애썼다고, 그래도 인생 허무해하지 않고 소소하게나마 의미를 찾으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대견하다고, 그래도 잘 살아 주었다고.


어려운 순간에 누군가 따뜻한 말로 다독여줬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게 공평인지 불공평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그 어느 누구도 힘나지 않는 한 해였다. 그러니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딱 눈을 감고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주는 거다. 나은 미래를 위한 채찍질은 잠시 멈추고 정말 수고했다고 있는 힘껏 안아준다. 낮을 때가 있으니 높아지는 때도 있을 것이고, 배고픈 날도 있지만 배부른 날도 있다고. 내년에는 상황이 조금 더 나을 테니 지금부터 미소를 띠고 다시 힘을 내서 살아보자고 그렇게 다짐해본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빵인 로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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