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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Mar 23. 2020

대학원생이 왜 정신병원에?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었어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2017년 나는 무척 힘든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힘듦이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한없이 밑으로, 어둠 속으로 잡아당겼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없다고 느꼈다. 매일 밤 소리 없이, 이유 모를 눈물만 흘렸다.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연구실에서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언제까지 논문을 보내달라는 교수님의 메일을 읽어도 열심히 해서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보내봤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꾸역꾸역 연구실에 가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퇴근 시간까지 시간만 죽였다. 평소에도 기분이 들쭉날쭉한 나였지만 이렇게 장기적으로 우울한 상태로 있으니 교수님도 심각성을 인지 하셨는지 따로 면담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첫 질문부터 울면서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수업을 듣는 것도 힘들었다. 하필 당시 들었던 수업은 보고서 제출은 없지만 정식 시험을 쳐야 하는 과목이었다.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쩌다 수업이야기가 나왔을 때 백지를 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걸 모르는 부모님은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언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분명 나는 또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남편, 당시의 남자 친구의 노력이 엄청났다. 내가 거부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분 전환을 하러 어디든 가자고 계속 제안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짜증 나니 제안도 하지 말라고 화를 냈었다. 백지를 내겠다는 나에게 문제 풀이를 알려주며 이 문제 만이라도 작성해보자 하며 나를 어르고 달랬다. 정말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고 손으로 턱까지 움직여 씹게까지 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에게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해 주었다. 


  정신과 예약을 했다. 평소라면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냥 알겠다 하고 예약을 했는지 모르겠다. 꽤 긴 시간 동안 의사 선생님과 울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기억에 남는 말은 '무리인 것은 알지만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떨까요?'였다. 논문도 작성해야 하고 매주 자료도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라 쉬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결국 난 약을 처방받았다.


  판단을 내려야 했다. 약을 복용해서 인지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어준 나를 전혀 모르는 의사 선생님 덕분인지, 더 이상 우울함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휴학을 결심했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박사 입학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었다. 한 번 쉴 만하다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이 별거 아니라고 느꼈다면 그걸 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부모님께 전화하여 다음 학기는 휴학하겠다고 했다. 연구의 흐름이 끊긴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 나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언니들이 휴학할 때 아무 말 안 했으면서 무작정 나는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부탁하니 알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수님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휴학 말고 1달만 쉬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지만 몸도 마음도 좋지 못해 연구실에 피해만 갈 것이라 죄송하다며 모든 상황을 다 말씀드리니 알겠다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정말 다 나의 변명들이었다. 이것 때문에 안된다. 저것 때문에 안된다. 나 자신을 내가 괴롭힌 것이다. 6개월 이후 다시 연구실에 출근했다. 저번처럼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으면 스스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 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주변에서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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