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햇살 Dec 21. 2024

오늘도 고양이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빠이의 동물친구들



햇살이 어루만진 것들


빠이를 떠날 날이 가까워온다. 아침이면 평온한 논뷰view가 따스하게 안아주는 이 숙소도 내일이면 떠나야하는데, 뒤뜰에 열린 푸릇푸릇한 열매들을 오늘에야 발견했다. 작은 열매는 겉면이 그저 사포처럼 거칠거칠할 뿐인데, 좀 더 자란 큰 열매는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 온몸에 가시 같은 것을 잔뜩 세우고 있다. 



식물은 포식자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택하는데 –예를 들면 사람들이 많이들 싫어하는 고수나 방아의 독특한 향기는 포식자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것인데, 그 향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만큼이나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 전략이 과연 성공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열매가 택한 전략은 아마도 ‘찔리기 싫으면 날 만지지 마!’인 것 같다. 하지만 훨씬 더 뾰족한 밤송이도 거침없이 까서 먹는 인간이 고작 이 정도 가시에 포기할 리 만무할 터, 사진을 찍어서 이미지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태국사람들은 이 녀석을 ‘카눈’이라고 부르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카눈’은 영어로는 ‘잭프룻JackFruit’이라고 불리는데, 고약한 냄새로 악명 높은 ‘두리안’과 매우 닮았지만 가시 끝이 좀 더 둥글둥글하고, 다 자라면 크기가 갓난아기보다 훨씬 커서 ‘세계에서 가장 큰 과일’로도 불리고 있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녀석들은 크기가 내 얼굴보다도 작은 걸 보니, 아직 한창 자랄 때인가 보다. 과일가게에 가면 카눈과 두리안 모두 껍질을 벗기고 꽃잎모양의 노란 속살만 손질해서 판매하는데, 둘의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지만 카눈이 크기가 더 크단다. 카눈 역시 특유의 향이 있기는 하지만 두리안보다는 견딜 만 하다고 하니, 다음에 시장에서 만나면 한 번 도전해 보기로!


여름의 햇살 가득한 뒤뜰에서 한갓지게 익어가는 카눈열매를 구경하며 설렁설렁 아침체조를 하는데, 오늘은 고영희마님과 꼬리가 짧둥한 고등어순찰요원 둘 다 바쁜지 감감무소식이다. 


코바늘로 가장자리에 정성들여 뜨개질을 한 것 같은 초록 잎사귀들


터벅터벅 오늘의 길을 나서니, 논에는 오늘도 소 두 마리가 정답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열심히 따라 그리곤 했던 동화 속 공주님 치맛자락을 닮은 나뭇잎을 발견하고 멈춰 서서 잠시 감탄했다. 어쩜 이렇게 생겼을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치앙마이사람들이 뜨개질한 멋진 작품들이 떠오른다. 예전에 스웨덴에서 첫 해외생활을 할 때, 봄이 되어 여기저기 봄꽃이 피어난 걸 보며 ‘스웨덴사람들이 좋아하는 특유의 색감들이 전부 이 들꽃들로부터 왔구나!’하고 깨달은 적이 있었는데, 치앙마이에서도 매일 똑같은 것을 느낀다. 인간의 미감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엔 모두 그 지역의 자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퉁이의 대가족


모퉁이 잡화점엔 오늘도 사람아이와 고양이강아지아이들이 너나 구분 없이 뒤섞여 바닥에 뒹굴뒹굴 하는 중이다. 그런데 엇! 오늘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카오스고양이 한 마리가 아이들이 앉아있는 식탁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다. 너희들, 여간 대가족이 아니구나!?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식구들이 또 있니? 물병보다 작은 아기시암고양이랑 매일 옷에 꼬질꼬질하게 흙을 잔뜩 묻히고 다니는 노랑이, 늠름한 고등어는 어디 갔어? 말을 걸어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카오스고양이.


강아지랑 어린이랑 나란히 뒹굴뒹굴


덩치 큰 개와 작은 개, 나이도 무늬도 다 다른 고양이들이 대체 어떻게 다들 여기 모여 살게 되었는지, 모퉁이를 돌 때마다 궁금해진다.


빠이 첫 단골식당


어제 왔던 ‘쏨땀식당’에 오늘 또 왔다. 빠이의 ‘첫 단골식당’ 탄생.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고민고민하다가, 꽃게젓갈이 든 쏨땀과 바질오징어덮밥을 주문했다. -산골마을의 작은 동네식당에서 주문했던 이 두 가지 음식은, 이후 치앙마이로 돌아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집밥’이 먹고 싶을 때면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내 영혼의 음식’이 되었다.-



알러지 때문에 ‘땅콩 빼고’ 주문한 꽃게쏨땀엔 꽃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다. 요런 녀석들을 한국에서는 ‘참게’라고 하지 않나? 아삭아삭한 그린파파야를 채 썰어 태국식 젓갈인 피쉬소스, 신맛이 나는 라임, 태국고추로 양념하는 쏨땀은 ‘무김치’ 혹은 ‘무생채무침’과 비슷한 맛이 나는데, 이 ‘꽃게쏨땀’은 그야말로 꽃게나 갈치 따위를 넣은 한국 남부지역 김치들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빠이는 북부 산간도시인 치앙마이에서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야 올 수 있는 지역인지라 해산물 수급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큰 기대 없이 주문했던 오징어바질덮밥의 오징어가 아주 탱글탱글 신선하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팟 끄라파오 무쌉’이라고 하는 돼지고기바질볶음밥 -‘팟’이 볶다, ‘끄라파오’가 바질, ‘무쌉’이 돼지고기라는 뜻인데, 맨 뒤에 붙는 종류만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오징어 등으로 바꾸어서 무한대 확장이 가능하다- 을 즐겨 먹는 것 같은데, 나는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오징어덮밥을 주문한다. 맛은? 한국식 오징어덮밥과 아주 비슷하면서도 깔끔한 맛!? 이 ‘바질볶음밥’엔, 한국으로 치자면 ‘김치볶음밥’ 같은, 프라이팬 하나에 뚝딱 볶아주는 ‘집밥’의 정취가 가득. 간만에 아주 정갈하고 정겨운 집밥을 먹었다.    


‘쏨땀전문’인 줄 알았는데, 밥도 맛있잖아! 카운터에서 살포시 식사메뉴를 집어 와서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다음엔 뭘 먹을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계산을 하면서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고 건넨 뒤, 마음 한 편에 뭉게뭉게 다음 방문에 대한 기대감을 지핀 채로 식당을 나와 다음 ‘두 번째 단골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고양이는 뒹굴뒹굴 


어제와 똑같이 대로변을 걷다가 짤따란 동네길로 방향을 꺾었다. 한적한 길을 걷다보면 나타나는 대궐 같은 집, 대문 앞엔 오늘도 공주님고양이가 나와 계신다. 나를 보자마자 오늘도 곧바로 데구르르- 뒤집어져버리는 공주님고양이!


또 왔어!? 얍- 내 환영인사를 받아랏!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분홍색 배를 드러내곤 더 열심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다. 공주님, 오늘도 먹고 사느라 지친 냥국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애쓰시는군요. 이 폭신폭신한 까아만 꼬리는 혹시 먼지털이개인가요? 


공주님 어쩜 이렇게 털이 고와요?


실컷 뒹굴고 싶은 만큼 뒹굴고 난 고양이가 이번엔 내 앞에 얌전히 두 발을 모으고 앉는다. 신나게 뒹구느라 비단결 같은 까만 털에 오늘도 마른 풀이 잔뜩 붙었다. 공주님고양이는 쓰다듬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저 고양이 옆에 나란히 앉아서 노오란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향해 함께 시선을 둔 채로, 뭉게구름처럼 둥둥 떠가는 시간을 잠시 그저 흘려보냈다. 


양산 그늘 아래서 뒹굴뒹굴


‘자, 이제 다음 일과를 해낼 차례야!’ 라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고양이가 작은 동네길을 가로질러 건너간다. 이 시간 즈음이면 공주님고양이가 사는 집엔 시원하게 그늘이 지는데, 맞은편 풀숲엔 아주 따스하게 정오의 햇살이 내리쬔다. 뽈뽈뽈 길을 건너간 고양이가 발라당- 뙤약볕이 달구어둔 풀숲 위에 드러눕는다. 그리곤 또다시 뒹굴- 뒹굴- 



바라보고 있으면, 훌러덩 늘어진 고양이의 분홍색 뱃살처럼, 구깃구깃하게 접혀있던 내 마음 한 구석도 덩달아 몰랑몰랑 늘어진다.  



공주님과 함께 뒹굴- 뒹굴- 시간을 보내며 냥국심사를 마친 뒤, 꽃송이 흐드러진 담장 곁을 걸어 두 번째 목적지인 <MOS cafe and eatery>에 도착했다. 주문을 한 뒤, 가방을 내려놓고, 제일 먼저 물가에 내려가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지러웠던 공사현장이 대강 마무리되고, 물가의 평상이 제법 완성된 모습! 



주인장이 혼자 즐기려고 만들어둔 공간인지, 아니면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좀 더 꾸며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음에 빠이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이 공간이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궁금해진다. 



크리스마스 민트초콜릿을 주문했다. 공식적인 성탄절은 이미 지났지만. 여름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은 초록에 둘러싸여있으니,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신비한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바스락바스락- 햇볕이 나뭇잎사귀마다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온다. 


털북숭이 동네친구들은 오늘도 바빠요


오늘도 카페 앞 작은 물가는 동네털북숭이친구들의 핫플레이스! 어제 만난 고등어고양이가 오늘도 뽈뽈뽈 물가로 내려가기에 뒤를 쫓아갔더니, ‘어제 내 뒤를 지켜준 바로 그 인간이구나!’ 알아보는 듯 녀석이 내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정수리에 살포시 손을 얹었더니 ‘애미야, 시원하구나, 더 긁어보아라!’라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박박박 정수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아이고, 좋아라!’ 하며 흙바닥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녀석.


박박박- 고객님 시원하세요?


‘자, 이제 나랑 같이 놀자!’ 라는 듯 털썩 자리를 잡는 녀석 앞에 똑같이 털썩 주저앉아, 유유히 흐르는 물 위에 내 마음 한 조각 띄워 둔 채로 오후의 한때를 흘려보냈다.


어라, 이 녀석... 이렇게 보니 코트가 엄청난 보호색인 걸!?


함께 시간을 보내던 고등어고양이가 벌떡 일어나 뽈뽈뽈 제 갈 길을 가기에 나도 그만 자리로 되돌아왔더니, 동네털북숭이들 집합시간인지 어제 본 누렁이가 어슬렁어슬렁 카페로 걸어 들어온다. 실컷 낮잠이라도 자다 온 건지, 누렁이는 걷다 말고 쩌억- 늘어져라 하품부터 한다. 


저기요, 강선생님, 하품하다 턱 빠지겠어요...


누렁이가 탈탈탈 물가로 신나게 걸어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까만 털이 섞인 친구등장! 약속에 늦은 듯 서둘러 물가로 내려간다. 주인장이 아직 부지런히 짓고 있는 물가 옆 작은 쉼터는, 역시 어제 짐작한 대로 이 동네 털북숭이친구들의 놀이터인 모양! 동네아이들 사이에서 요즘 인기최고인 ‘핫플’을 알아냈다는 별 것도 아닌 사실이, 왜 이리 신나는지.


뭐? 누렁이가 벌써 와있다구?


‘얘들아, 재밌게 놀아! 나는 이만 갈 곳이 있어서.’


다음 목적지가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서둘러 카페를 나서는데, 아까 만났던 고등어고양이가 어디선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쭐래쭐래 내 앞을 가로막더니, 벌러덩 누워버린다. 



이크, 또 잊었다! 빠이에선 항상 고양이를 쓰다듬을 시간을 비워 두어야한다는 걸!


조금 더 이대로 있어도 괜찮아


‘뭐가 그렇게 바빠? 아직 태양이 이렇게 환한데. 좀 더 놀아도 괜찮아!’


내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은 고등어고양이를 따라서 나도 털썩 자리에 앉았더니, 녀석 얼른 내게 다가와 이리 비비고 저리 비비며 자신의 체취를 잔뜩 묻힌다. 이 카페에 들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인데. 너와 난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오늘 우리가 이렇게 다정해도 되는 걸까? 


우리 쪼끔 더 이렇게 있자, 아직 태양이 환하게 떠있잖아!


곧 빠이를 떠나야하는 아쉬움이 잠시 무겁게 밀려왔지만. 이내 모두 길 위에 내려놓고서, 오로지 지금을 살아가는 데 충실한 작은 고양이를 따라서 뭉게뭉게 떠가는 시간에 두둥실 마음을 맡겼다.   




Copyright  2024 by 여름햇살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