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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 말고 우니초밥

치토세 공항

by 여름햇살

점심도 못 먹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먹는 음식은 뻔하지만 그래도 공항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기대감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남은 그 나라 돈을 공항에서 탕진하는 재미가 있다. 식사 시간까지 포함해서 계획했던 시간보다 공항에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지연됐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들어간 치토세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못 먹은 점심을 먹으려니 남편은 라멘을 먹겠다고 하고 나는 초밥을 먹겠다고 했다. "일본에 왔는데 라멘은 먹어야지."평소에도 라면을 좋아하는 남편은 일본에서의 식사가 계속 맘에 안 들었는지 얼큰한 국물 타령을 했다. "일본에 왔는데 당연히 초밥을 먹어야지." 나도 고집부렸다. 한 끼 정도는 초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오타루 거리에서 못 먹은 초밥을 공항에서라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식사 메뉴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이건 그냥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내가 초밥을 고집하면 당연히 남편이 따를 줄 알았는데 "그럼 넌 초밥, 난 라멘." 한다. 몇 개 안 되는 식당가를 돌았지만 초밥과 라멘을 같이 파는 집은 없었다.

따로 먹으면 될 것을 라멘 먼저 먹고 초밥도 먹기로 했다. 라멘과 마늘볶음밥이 있는 집에 줄을 섰다. 둘 다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다. 다른 일행들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웃으며 눈인사만 하던 일행인데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가 줄을 서 있으니 뭘 좀 알고 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음식이 너무 비싸요. 천 엔으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요." 패키지에 점심식사 천 엔이 포함되어있었다. 다른 라멘집도 있는데 이 집엔 마늘볶음밥이 있어서 줄을 섰다고 말했더니 마음에 들어 하며 같이 줄을 섰다.

"초밥이 너무 비싸지요? 우니 들어간 초밥은 오천엔 하던데"

상대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희는 우니초밥 먹기로 했어요, 와이프가 꼭 그거 먹겠다고 해서."

남편이 대답했다.

"봐라. 그거 먹는다잖아. 으이그 쫌생이, 천 엔짜리 음식 없다고 뱅뱅 돌기나 하고"

아줌마가 눈을 흘기며 말하자 아저씨가 쑥스러운듯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귀여웠다. 젊은 시절을 함께 열심히 일하고 아끼면서 살아왔을 그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여행 첫날 편의점에 갈때 만난 손잡고 오던 부부였다.

우리도 좀 전에 그런 대화를 했다.

"우니초밥을 꼭 먹을 거야."

우니초밥은 단 한 조각 들어있는 초밥 한 접시가 과하게 비싸긴 했다.

"오천 엔이나 주면서 먹겠다고?"

"응 난 일본에서 우니초밥을 꼭 먹어야겠어."

"너무 비싸지 않아?"

"비싸도 먹을 거야. 싼 건 니 친구들하고나 먹어.“

제주에 있을 때는 일본산 수산물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억지 부렸다. 돈 관리는 내가 하는데 한 번 들어온 돈은 잘 안 꺼내는 좋은 습관이 있어 여행할 때는 남편에게 맡긴다. 레스토랑 가면 꼭 코스요리만 보던 남편이 좀스럽게 구는 걸 보면 돈은 관리하는 사람이 아끼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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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되어 음식을 시켰는데 마늘볶음밥은 sold out 이란다. 초밥 먹을 배는 남겨놔야 해서 눈치 보며 그냥 라멘 하나 시켰다. 갈비 어쩌고 하는 라멘이었다. 얇게 썬 고기가 들어있는 그림을 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당연히 우리식으로 숯불에 구운 야들야들하게 윤기나는 살이 붙은 뼈다귀를 상상했다. 고기도 라멘도 맛이 없었다. 라멘을 노래하던 남편이 미안해했다. 초밥 먹으러 갈 차례였다. 식당가를 돌았는데 일찍 닫은 건지 아직 안 연 건지 초밥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공항 음식에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초밥을 먹고 싶었는데, 맘이 상했다. "초밥도 못 먹고 면세점에서 남은 돈 다 쓰고 가자." 이번에는 엔화를 바꾸지 않았다. 예전에 갔을때 쓰다가 남은 걸 언젠가 또 가겠지 하고 남긴 게 7년이 지났다. 그거 쓰러 가자고 일본 갔는데 패키지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오르골도 못 사고 니세코 티도 못 사고 면세점에서 과자만 잔뜩 사고 돈을 또 남기고 왔다. 안 되겠다. 눈보러 삿포로 한 번 더 가자. 오르골도 눈에 들어오는 거 얼른 집어 들고 커플룩으로 니세코 티도 사고 우니초밥도 꼭 먹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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