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담시장
가이드를 따라 어디에 왔는지도 모르고 처음 도착한 곳은 담 시장이었다. 담 시장은 나트랑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고 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무조건 걸었다. 가는 길에 늘어선 노점 카페에서 상인들이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했다. 동남아임을 실감하게 망고도 망고스틴도 눈길을 끌었다. 망고스틴을 보니 둘째가 생각났다. 좋고 싫은 게 뚜렷한 아이라 평소 좋아하던 걸 보면 꼭 생각이 난다.
오래된 시장은 건물 안도 더웠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말린 과일이나 견과, 건어물을 조리해서 팔고 있었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음식 냄새는 코를 찔렀다. 주로 현지인들이 가는 시장인 듯했다. 음식 냄새를 견디지 못해 조금 둘러보다 그냥 나왔다. 건물 밖에는 잡화를 파는 노점이 둘러 가며 있었는데 아이보리색의 그물로 촘촘히 짠 가방과 모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인건비가 싸서 전부 핸드메이드라고 한다. 남편은 이번에 백팩을 메고 와서 불편하다고 투덜대더니 내가 관심을 보이는 걸 보고 노점에 있는 가방 가게에서 그물로 된 여성용 가방을 골랐다. 가게 안쪽에서 "16만 동"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외국인인 걸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21만 동이라고 했다. "왜 비싸졌어? 16만 동이라며." 웃으며 따지니 역시 웃으면서 손해 보고 준다며 "19만 동"이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다. 해맑게 웃는 그들의 착해 보이는 얼굴은 거짓말을 해도 거짓말을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보인다. 핸드메이드 라벨이 붙은 그물 가방은 남편의 건강한 어깨에도 잘 어울렸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충 둘러보고 노점에 앉으니 가이드가 음료와 망고를 시켜줬다. 뜨거운 날씨에 먹는 사탕수수 주스와 망고 주스가 정말 달았다. 직원이 아기 머리만 한 망고를 쓱쓱 썰어주었다. '다들 망고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 망고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맛있긴 하지만 망고 말고도 맛있는 과일은 많다. 나는 망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받아먹는 입장이면 달라질지 모르겠는데 손질하는 입장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망고는 썰면 물이 줄줄 흐르고 씨는 버리기에 아까워서 먹어야 할 것 같은 과육이 잔뜩 붙어 안 떨어지고, 힘들게 썰어놓으면 또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고생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져서 싫다. 복숭아도 말랑 복숭아를 싫어한다. 가족들은 말랑이를 좋아하지만 손질하는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그것이 싫어서 딱딱이만 산다. 후덥지근한 시장의 노점에서 직원이 솜씨 좋게 손질해준 망고를 맛있게 먹으며 든 생각이다. 남이 썰어준 망고는 맛있었다.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서로를 파악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착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앞으로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주 작은, 6살쯤 되어 보이는 마른 여자아이가 껌을 팔러 왔다. 요즘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에 우리 엄마는 집에 목탁을 두드리며 오는 스님이 있으면 없는 형편에도 꼭 시주하고 음식을 대접하곤 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당연히 내가 간 음식점에 껌 팔러 오는 할머니에게도, 사무실에 볼펜이나 칫솔을 팔러 오는 이에게도 꼭 물건을 사는 사람이었다. 다들 외면했고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행할 때면 남편에게 돈을 맡기는 나는 돈이 하나도 없다는 몸짓을 취했다. 나도 모르게 남편을 보는 걸 눈치챘는지 아이가 남편을 향했다. 남편은 가이드랑 꽤 진지하게 이야기 중이었다. 가이드가 버릇된다며 모른 척하라고 했고 남편은 모른 척했다. 종종 여행자를 상대로 찾아오는 아이인 듯했다.
아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남편이 쳐다보지 않자 눈을 살짝 내리깔고 어깨를 툭 쳤다. 남편의 앉은 어깨와 서 있는 아이의 어깨가 서로 맞닿았다. 둘이 대화하며 외면하니 잠시 기다렸다가 어깨를 툭툭 치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 상황이 당황스럽고 우스웠다. 어이없어진 남편이 돈을 꺼내자 빼앗듯이 가지고 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왜 남편에게만 그랬지?" "그니까.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이나? 왜 나한테만 그래." 약 오른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남편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운동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단단한 체격에 인상이 강해 한번씩 무섭다는 말도 듣는 편이라 좀 의아하면서 웃음도 났다.
처음엔 안쓰러운 마음이었는데 여행 내내 그 아이의 눈빛이 걸렸다. 영혼 없이 껌 좀 씹는 언니처럼 눈을 내리깔고 여행자를 보던 눈빛. 처음 보는 여행자의 어깨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치면서 돈을 빼앗듯 가져가는 아이의 건방짐. '사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동시에 '아이일 뿐인걸.'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 껌은 여행 내내 가방에 그 아이의 눈빛과 함께 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그 껌을 씹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날 호텔 방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왔던 기억이 새삼 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지 알 것 같은 아주 작았던 아이의 표정과 함께. 덕분에 여행 갈 때 작은 단위의 화폐 정도는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담 재래시장에서는 허름한 노점의 평상에 앉아 사탕수수 주스와 망고를 꼭 먹는 걸 추천.
*핸드메이드 가방은 잘 보니 마감이 깔끔하지 않고 여기저기 실이 삐져나왔다. 저렴하니 가볍게 현지에서 들고 다닐 만은 하다. 부티 언니들도 예쁘다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