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는 여행
운수요는 중국 전통 건축과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물과 풍경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TV에 나왔던 '독박즈'의 여행일정을 그대로 따라 운수요 마을 안에 있는 식당에서 현지식 토루 지방 요리를 먹기로 되어 있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본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불빛과 어우러져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나무 아래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물가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상점들에 서잡화와 간식거리들을 팔고 있었는데 붉은 간판과 불빛이 중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관광객이 지나가도 가만히 앉아 있는 가게 주인마저도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운수요의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는 식당의 커다란 테이블 두 개에 17명이 나눠 앉았다. 음식은 중국식으로 회전판에 나와 덜어먹는 방식이었다. 회전판이 나오면 나는 눈치를 보느라 음식을 잘 집지 못한다. 당연히 그러는 건데도 돌리려면 눈치를 보게 된다. 전통음식이라고 해서 특별히 향이 강하지는 않았고 고기와 야채가 푸짐하게 어우러져 나왔다. 일행들은 모두 조용히 식사했다. 가이드가 두 병씩 올려 준 맥주도 내가 거의 다 마셨다. 가이드가 필요한 음료를 말하라고 했을 때 다들 콜라만 말하고 나 혼자 맥주를 달라고 했으니 내 거 같아 나 혼자 먹어도 별로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맥주 앞에서 욕심쟁이가 된다. 보통 그 나이대의 한국인들은 굳이 현지식당에서 비싼 소주를 찾곤 하는데 술을 즐기는 이는 없어 보였다.
증조안 거리에서 두 시간을 차로 이동하는 동안 허기가 졌는지 모두 음식을 잘 먹었다. 운수요의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는 그 식당에서 풍경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눈앞의 음식만 보았다. 식사 후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는데 대부분 커플이라 부부가 돌아가며 서로의 독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구 하나 찍어달라는 사람도 찍어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남편과 나도 둘이 셀카로 얼굴만 나오게 찍을 뿐 부탁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나는 낯을 많이 가려 누가 말을 시켜도 조용히 대답만 했는데 나도 모르게 사진 찍는 부부에게 다가가 찍어주겠다고 먼저 말을 하고는 깜짝 놀랐다. 내향인들만 있는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만든 것일까. 그분은 저 멀리 불빛 나는 물레방아가 나오게 찍어달라고 했다. 구도가 난감해 이리저리 움직일 때 남편이 다가와 조용히 폰을 받아 들었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보면 조용히 보다 슬쩍 웃고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내주는 남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남들은 잘 찍었다고 칭찬하는데, 딸도 남편도 대놓고 비웃는다.
흐르는 물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천지연 폭포의 징검다리가 떠올랐다.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공원이나 광장에서 요가도 하고 체조도 하는데 왜 외국에서 보는 건 그들만의 특별한 문화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커플, 조용히 손잡고 가는 커플, 열심히 아내를 따라다니며 사진 찍는 아저씨를 보니 예전에 친구가 어린 커플을 보며 남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옛날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알아. 요즘시대에 태어났으면 여자친구 쫓아다니며 사진만 찍고 있을 텐데." 더 옛 세대의 어르신도 아내를 쫓아다니며 사진만 찍고 있었다. 나이 들어도 함께 다니는 부부 여행자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들이 아닐까. 남편과 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걷던 부부들. 나이를 먹어도 함께 걷고, 함께 바라보고, 함께 웃던 그들의 모습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며 배우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익숙한 모습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