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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프다

결국엔 당신과 나

by Asset엄마

“위기는 기회일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이번 일로 오히려 다른 문이 우리에게 열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당신이랑 나랑 본 이순신 영화에서 그랬쟎아,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있다면”


휴직을 받아들이기 힘든 남편이지만, 그의 상태는 좀 심각했다.

한번씩 엄습하는 공포,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극도의 예민함, 그리고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불안함은 TV조차도 보기 어려웠다. 밤잠도 수면제를 먹고 겨우 청해야 하는 지경이기에 낮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의 하루는 너무나 길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나랑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는 안정적이고, 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고, 한번씩 날리는 나의 돌직구에도 크게 놀라지 않으며 평상시에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긍정적이며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참 이상했다. 내가 남편이랑 이렇게 엄마나 여동생과 나누는 대화처럼 그 상황의 세세한 감정마저 공유할 수 있다니.


우리는 평상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와의 대화하는 시간을 즐기지는 않았다. 성격 자체가 예리하고 요즘 말로 대문자T인 관계로 단어 선택이 정확하지 않을 시에는 바로 지적을 하고, 그의 공감을 얻는다는 건 사치였다.

남편은 1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자금이 오고 가는 금융시장에서 20여년간 종사하였다. 언제나 시간의 압박 아래 일을 하며,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실적, 숫자였다. 남편에겐 과정은 중요하지 않으며, 추상적인 설명은 머리만 복잡하게 할 뿐이다. 요점만, 결과만 그리고 숫자로 명료하게 얘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화법이다. 한번씩 나는 탄식처럼, “ 하아… 정말 안 맞아” 를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내가 망막박리로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울면서 수술실에 들어갈 때 남편은, “왜 울어, 큰 수술도 아닌데” 라는 전혀 도움 안되는 위로를 건내던 그가 참 원망스러웠다. 그날 처음으로 남편은 말했다.

“내가 너 수술실 들어가고 나서 나올 때 까지 울면서 기도했어”


그동안 부부로써, 부모로써 아이들을 키우는 함께 한 순간순간 나는 나 혼자 울고 웃었던 날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남편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말 좀 이쁘게 하면 누가 뭐라고 한다니.

내친김에 나는 말했다.


“내가 책에서 봤는데 누구나 한번씩 오만이 꺾이는 날이 온데. 나는 그 날들을 겪었어. 난 세상이 다시 보이더라. 당신도 그러길 바래.”


수면제를 먹고 밤잠을 청하는 남편 덕분에, 십 수년만에 신생아를 키우는 집처럼 학원 다녀온 아이들과 귓속말로 얘기하고 까치발 들고 다니는 밤들이 이어지고 있다.


<삽화는 사랑하는 막내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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