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설렘이 가슴 한가득 밀려들었다.
아이의 첫 비행, 바다 앞에서의 가족 사진, 열대의 햇살 아래에서의 웃음.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준비했다. 목적지는 필리핀 보홀.
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손짓하는 낯선 풍경 속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출국 전날 밤, 캐리어를 여러 번 열고 닫으며 자꾸만 마음이 붕 떴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오랜만에 마주한 모험 앞에서 약간은 들떠 있었다.
보홀의 바다는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맑고 따뜻한 물, 해변에 나란히 앉은 가족들,
그리고 이국적인 음식과 소란스런 웃음소리.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는 현실이 닿지 않는 환상의 감촉이 살짝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묘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낯선 침대, 적응되지 않는 음식, 끊기는 와이파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컨디션을 살펴야 하는 긴장감.
여행은 기대만큼 즐거웠지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쉬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집 가고 싶다.”
이 말이 우리 셋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한국 공항의 공기가 어찌나 편안하게 느껴지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낯익은 공기, 부드러운 이불, 조용한 소파가 반겨주었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사람은 여행을 그렇게 기다리면서도, 결국 집이 제일 좋다고 느끼는 걸까?
보홀의 바다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더 따뜻했던 건 돌아와서 느낀 익숙한 하루의 공기였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지만,
그 익숙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위로였다.
늘 먹던 국, 늘 앉던 자리,
아이가 방에서 흘리는 웃음소리,
아내가 내리는 커피의 향.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이번 여행은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것도 소중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은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에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뜻이니까.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내 아이가 뛰어와 안기는 그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고,
식탁에 둘러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 평범한 저녁이 가장 따뜻한 기억이었다.
여행은 가슴을 뛰게 하지만,
일상은 마음을 다독인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그 다정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지금 일상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져 지루하다고 생각했는가요?
그렇다면 어쩌면, 당신은 이미 가장 단단한 행복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버린 바로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