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05_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모든 직장인에게 바친다

멈추지 않기 위해 잠시 멈춘다...

by D 도프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모든 직장인에게 바친다


결심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신청서 한 장을 제출하는 데는 1분이 걸렸다.

육아휴직은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 혹은 절박한 누군가의 선택. 나는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대로라면 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살아진 세월만큼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이 찾아왔다.

아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마웠지만, 현실은 매달 200만 원 정도의 정부 지원금과 함께 생활비와 교육비, 대출 상환을 버텨야 하는 계산서 위에 놓였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쉽게 놓을 수 없는 무게였다.

돈이 부족하면 아내에게 카드를 달라고 해야 하나?

내가 벌어다주지 못하는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문득문득 드는 그 작고 날카로운 자책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했다.

회사의 반응은 의외로 따뜻했다. 같은 실 동료들은 "십 년 넘게 달려왔으니 숨 좀 쉬어야지." 하며 축하해주었고, 작은 선물들이 책상에 쌓였다. 퇴사하는 것도 아닌데 과분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축하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같은 파트 동료들에게 내 빈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파트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송구스러움과, 반대로 손에 들린 짐을 내려놓는 듯한 묘한 해방감이 하루 종일 교차했다.

마지막 근무일, 퇴근길. 보통보다 가벼운 서류가방 하나를 매고 회사를 나설 때 느낀 그 이상한 가벼움. 익숙한 엘리베이터, 퇴근하면서 듣는 똑같은 노래 속에서 나는 혼자만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사람처럼 어색하고 자유로웠다.


가정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하루 종일 함께해야 하는 부담감을 숨기지 못한 아내와, 매일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 가끔은 마주 앉아 웃으며 "오늘 점심은 뭐를 먹을까?" 항상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고민은 아내와 주고받았다.

무언가.... 정말 같이 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27일 오후 08_11_23.png


우리 딸아이는 더욱 맑게 빛났다. 등하교를 아빠가 책임지고, 하교 후에는 매일 아빠와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몸으로 온 세상을 품은 듯한 기쁨을 표현했다. "아빠, 매일매일 우리 놀 수 있어?" 아이의 눈이 내 하루를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순간을 더 오래 눈에 담았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 학교 가는 발걸음의 경쾌함, 잠들기 전 책을 읽다 스르르 스러지는 얼굴. 이전에는 놓치고 지나갔던 모든 소중한 순간들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저녁이면, 어느새 익숙해진 가사 분장표를 들여다보며 내가 살아가는 구조 자체가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잠들기 전 업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뇌에 하나의 방이 더 생긴 것처럼, 숨겨졌던 감각과 생각들이 다시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보고서를 쓰지 않아도, 답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나는 온전한 ‘나’로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업무를 걷어낸 내 자신은 생각보다 더 단순했고, 더 솔직했으며,

매일 빙글빙글 돌던 트랙에서 내려와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사람 같았다.


육아휴직 첫 주.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하루를 배우고 있다.

출근을 멈췄지만, 나는 멈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부터 진짜로 '쌓이는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기록은,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바친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매일을 버텨내는 당신에게.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는 자유를 꿈꾸는 나 자신에게.


당신이 머뭇거리는 동안,

당신의 아이는 오늘도 자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것에 도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시간을 내 손으로 붙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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