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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Sep 02. 2022

두 사람의 만남, 그 기적


몇 년째 인간관계에 변화가 없다.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을 아무리 만나고 다녀도 결국 내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상이 왜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다. 왜 관계라는 것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냐는 말이다.


2019년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 우주의 한 기둥을 차지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친구를 사귄 것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관계를 통해 달라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더 열을 올렸다. 관계를 통해 삶의 지평을 더 넓히고 싶었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던 일이 한 번 발생했으니 같은 일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 한 시절에 머물렀던 인연들이 있었지만 인간관계의 폭은 정해진 탄성이라도 있는 듯 언제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인연은, 관계는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더 노력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론 노력을 멈출 생각은 없다. 방구석에서 타자기만 두드린다고 새로운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뭐랄까. 인연을 찾는 일은 망망대해 어딘가에 보물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무런 단서 없이 그 보물을 찾아 나서는 것 같다. 그러니 두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가장 연약한 곁을 내어주는 일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다. 보물 같은 일이다.


아직도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내 관계의 핵을 이루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이들이 내 삶에 나타난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왜 거기엔 노력은 없고, 지극히 순수한 자연스러움 밖에 없는 것일까. 왜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 같으냔 말이다. 


나의 관계들은 다 피동적 형태를 띤 느낌이다. 내가 그들을 나의 우주로 초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대장도 없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는 내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 다행인 건 이들이 모두 따듯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문득 고마워졌다. 이 기적 같은 모든 일들에. 그리고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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