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갑니다. 세상이 저물어요. 가을의 향연을 위해 오색 옷으로 단장한 나무들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볼 뿐입니다. 이따금씩 마음이 아려오지만 이 감정이 '슬픔'은 아닙니다. 절정으로 치닫는 가을을 슬퍼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쉬운 감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요. 가을은 또 한 해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찾아와요. 그래서 슬프지가 않아요. 또 올 것을 알기에. 또 이 놀라운 세상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걸 알기에. 참... 이 가을을 서른네 번째 마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이롭습니다.
만물이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생애도 다르지 않아요. 끝없이 순환할 뿐, 거기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그대가 죽을 만큼 힘들 때 행복의 씨앗이 움트고, 반대로 그대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때 불행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해요. 불행과 행복은 그저 파동의 고저에 이름을 붙인 것뿐입니다. 힘들어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이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입니다. 삶의 계절적 순환을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삶이 힘들어요. 제가 말만 이렇게 하지, 힘들어요. 참 더럽게 힘들어요. 근데 좋아질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에 버틸만하다는 거예요. 가을은 또 옵니다. 당신의 삶에도 가을은 또 와요. 눈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 온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살아가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