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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08. 2016

학부모를 위한 수업 - 삶

2014. 03. 25.

교실로 들어오는 어머님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학부모에게 교실은 편하지 않은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실에서는 그분들이 주인공이다.


이번 공개수업의 주제는 '삶'으로 정했다.

시작에 앞서 이 수업은 어머님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운을 떼었다.

어머님들도 발표를 할 것이라 하자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어머님들은 당혹스러워하셨다.


묘한 어울림 속에서 함께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읽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낭송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느낌을 물었다.

"남녀가 연애할 때 쓴 시 같아요."

"꽃 위에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발표가 진행되자 어머님들 쪽으로 다가가 느낌을 여쭸다.

다들 머뭇거리시기에 아이들도 발표하라고 하면 이런 기분이라며 농을 했다.


I의 어머니가 수줍게 손을 들더니 자신이 결혼 전에 좋아했던 시였다고 하셨다.

그때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생각났는데 지금은 I가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머님들에게도 여러분과 같이 어린 시절이 있었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여러분들을 낳고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어머니에게도 이름이 있답니다.

어머니만의 삶이 있답니다."


말을 마치고 '엄마가 울었다' 영상을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xLDjc3c3wWs)

부모님께 진심 어린 칭찬 30번을 하면서 겪은 일을 일기로 쓰는 숙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칭찬을 들은 부모님은 화를 내거나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어머님들 모두 교실이 떠나갈 듯 웃었다.

그러나 점점 칭찬이 진심이 되고, 부모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내며 가족 간의 애정이 싹트는 장면에 숙연해졌다.


아이들은 자신은 부모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고민에 빠졌고 어머님들은 내가 아이에게 칭찬을 자주 하는지,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을 풀어내도록 하니 좀 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한 편의 시를 더 읽었다.

나태주 시인의 짧지만 여운이 긴 시, 풀꽃을.




                                              풀꽃

                                                                               나태주



시의 의미를 유추하도록 했더니 온갖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님들의 발표도 점점 길어졌다.

시를 감상하는데 정답이 있겠냐 마는 내가 이 시를 가져온 의도를 말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을 뜻해요.

방금 영상에서도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이 관심 어린 시선으로는 칭찬 거리가 됐던 것처럼.

오래 본다는 것은 잠깐의 모습 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부모님과 좋은 기억이 많죠?

어머님들도 아이들과 좋은 추억이 많지요?

그런데 우리는 좋은 장면보다는 서운하거나 속상한 때를 잘 기억합니다.

행복한 시절을 기억할 때 사랑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남이 바라본 모습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oWUsews2gtg)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다른 이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의자를 돌려 어머님을 바라보게 했다.

어머님이 젊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고.

그러나 여러분을 낳은 뒤에는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느라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새겨진 거라고.

앞에 어머니가 계시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박수를 보내자고 하였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더니 어머님, 아이 모두 갈채를 보내주었다.


이후 20분간 주어진 상담 시간에는 아이들과 어머님끼리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주었다.

'엄마, 예전에 잘 나갔다면서요?'

'초등학교 때 몇 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발표하시는 모습을 보니 왕년에 발표 좀 하셨나 봐요?'

같은 기상천외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고,

'부모님들은 우리 나이에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나요?'

'시험 성적이 잘 나오면 왜 선물을 주는 건가요?'

처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이야기도 나왔다.


무척이나 진지할 때도, 함께 하하호호 웃을 때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 표정이 밝았다.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었다며 환호했고, 어머님들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몇 명은 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이런 반응을 보니 뿌듯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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