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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11. 2016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교실

2014. 3. 28.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내가 해줘야 해.'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대한다면 아이들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처음으로 회장단이 정기회의를 진행했다.

안건을 받았는데 '과자를 줄이자', '핸드폰을 하지 말자' 등이 나왔다. 

최근에 내가 마음 두고 있던 부분이다.

내가 불편한 것은 결국 아이들도 불편해 한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과자를 줄이자'가 안건으로 채택되고 회의를 진행한 결과 아이들이 만든 첫 번째 규칙, '과자는 생일파티 때만 먹는다.'가 만들어졌다.

내가 하는 일은 그 규칙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급 규칙 문서를 만들어 게시하기만 한다.

이마저도 회장단이 확정되면 스스로 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스스로를 조절해나간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회의가 만들어진 이유가 아닌가.

아이들 내면에 흐르는 선조의 지혜인 것이다.



오후에는 생일잔치를 가졌다.

3월 생일 주인공들이 며칠 동안 고민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정한 잔치 차례를 설명하고 직접 진행하였다.

처음 하는 거라 진행 중에 상처를 받은 아이도 있었고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두 시간 내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로의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아이들이 속상한 아이들을 위로해주며 청소까지 깨끗하게 마쳤다.


내가 도와준 것은 몇 명이 자신의 기운을 조절하지 못해 너무 활발해져 생일 주인공들이 감당하기 힘들어할 때 두 번, 분위기를 정리해준 일뿐이었다.


잔치가 끝나고 진행된 짧은 회의에서는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내가 생각한 부분이 아이들 입을 통해 대부분 나왔다.

주인공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주도하고 깨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저녁에 학교에 남아 학부모님들께 전화를 돌렸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학교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더 알아야 할 사항은 없는지 여쭸다.

정말 고맙게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선생님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며 선생님을 만나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다.


S 아버님은 아이가 입학 전까지 말을 잘못해 기가 많이 죽어있었는데 지금은 친구 집에서 놀기도 한다며 좋아하셨고, H 어머님은 작년에 전학오고 예전 학교를 많이 그리워했는데 지금은 수업에서 배운 것을 신기해하며 말도 늘고 학교에 가서 논다 하셨다.

부모님들께서는 내가 무척 쑥스러울 정도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더불어 아이에게 바라는 점이나 격려의 말씀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J 어머님과 상담하다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점점 J의 상황이 좋아진다고 설명을 드리는데 '실패의 경험'이라는 말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어머님에게는 그 말이 큰 상처로 남아 다른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이런 데서 내 부족함이 드러난다.

그런 단어가 생각난 자체가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마음이 편치 않아 어머님께 문자를 길게 보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J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이렇게 깨어지는 경험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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