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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y 15. 2016

잔소리도 곱씹으면 교훈을 얻는다

2014. 5. 30.

체육시간인데 H가 교실로 들어서며 나에게 물었다.

"여자애들 어디 갔어요?"

응?

이게 무슨 소리야.


H의 말만 듣고는 상황 판단이 잘 안되어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체육 활동을 하지 않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사정을 듣고 나니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무척 무더웠음에도 운동장에서 활동을 해야 했는데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피부가 상할까 걱정되어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체육선생님께서 화를 참고 따로 그늘에서 활동을 하도록 했는데도 그 아이들이 계속 투덜대자 감정이 폭발하신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걱정되는 점이 많아 아이들에게 선택을 하도록 했다.

점심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지금 이야기를 할지, 오후에 생일잔치 시간에 이야기를 할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금 하자고 해서 교실로 올라가 체육시간 때, 각자의 입장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몇 명 때문에 전체가 체육수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짜증, 미안하긴 했지만 뒤에서 공주병이다 뭐다 험담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는 입장이 대립됐다.

또한 많은 아이들이 다른 친구 때문에 자신이 피해 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문을 표출해서 마지막에 '공동체'에 대해 짧게 정리를 해줬다.


"너희들이 좋든 싫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너희들은 한 반으로 본단다.

몇 명의 친구들 덕분에 칭찬을 들을 수도 있고, 몇 명의 친구들 때문에 혼날 수도 있어.

그게 책임을 공유하는 공동체야."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아이들의 마음이 풀릴 만큼 이야기가 충분하지도 않았지만 배식 시간 때문에 서둘러 마치고 급식소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가는데 Y가 볼멘소리를 했다.

"남자아이들이 짜증 난다고 뭐라 했어요."

하아.

예상은 했지만 이럴 땐 나도 기운이 빠진다.


모든 아이들을 불러 모아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전에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특히나 J와 Y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일주일 전에 내부의 적에 대해서 수업했던 것 기억나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정말 못해낼 것이 없어.

지금 우리는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잖아.

그렇다면 우리의 내부의 적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짜증, 욕심, 욕, 불만, 이기적인 마음, 배려 없음, 폭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국 모인 의견의 대부분은 참거나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참거나 대화로 해결하라고 하면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니?"

"네, 그랬어요."

"그런데 너희들의 결론도 마찬가지구나."

"신기하네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줄 때가 되었나 보다.

마음이 깃들이지 않은 기술은 형식일 뿐.


추가.

이어진 생일잔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이들은 신나게 먹고 즐겼다.

방금 내부의 적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잊은 듯한 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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