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물권 탐사기
작년 봄, 14살의 막내 동생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13년간 우리랑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반려견 '두나'의 이야기이다.
사정상 키우지 못하게 된 사촌이 우리 집에 두나를 잠시 맡긴 것이 계기였는데 일주일만 임시 보호를 하겠다던 우리 가족은 결국 13년을 두나와 함께 살았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넘쳐났지만 미성숙하던 나는 두나와 함께하면서 좀 더 넓고 깊게 동물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 단체에 후원을 시작했고, 동물권에 대해서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홀로 서울로 오게 되면서 두나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자 나는 유기견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봉사를 통해 한국의 유기견 실태와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는 드문드문 가게 되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작년에는 일이 많이 바쁘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웠다. 늘어난 여가 시간에 동물권 도서와 기사를 자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봄 우연히 알게 된 유기동물 보호 센터에서 유기견 산책 자원봉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작년 가을부터는 반려인과 함께 유기견 촬영 봉사를 함께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입양률이 높은 편이라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할 때쯤 곧바로 좋은 가정에 입양 가곤 했다.
작년 우리 부부의 주말은 잔잔하고 평범하지만 꽤나 규칙적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센터로 가서 그곳의 유기견과 산책을 하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산책을 나올 때부터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바깥에 나오는 것이 무서운지 떨면서 꼬리를 다리 밑으로 감아 넣고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음을 열어주곤 했다. 아마도 센터 선생님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받은 사랑 때문이지 않았을까. 종내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밝은 모습으로 새 가족을 맞이했고 센터를 떠났다.
10년 전에 내가 다녔던 유기견 센터는 많이 낙후된 공간이었다. 큰 규모의 단체에서 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체의 아이들이 있다 보니 개별적인 케어가 어려웠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유기된 개와 고양이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무분별하게, 충동적으로 펫샵에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온다는 것에도. 그 이후로 펫샵 근절을 위해 지인들에게 유기견 입양에 대해서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저 관련된 기사와 영상을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끌어와 올려두는 일. 딱 그 정도였다. 이렇게 잔잔하게 근처 사람들에게 알리다 보면 언젠가는 입양 문화가 좋게 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2022년 현재를 보면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유기 동물을 반려로 입양하긴 하지만, 아직도 펫샵과 가정 분양은 성행하고 있다.
나는 내 근처에는 펫샵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순진한 착각이었다. 요즘은 펫샵에서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것이 왜 좋지 않은 방법인지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용할 사람은 이용하는구나. 절망적이었다. 나 하나가 잔잔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결코 변하지 않는구나. 좀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구나.
이제는 좀 더 크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 스텝으로 작년 연초 새해맞이와 함께 친구와 동물권 관련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지금은 전반적인 환경 문제를 다루는 중이다). 작년 봄에 유기견 봉사를 다시 시작했고, 유캔두라는 어플을 통해 동물권에 대해 공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는 동물권 스터디를 모집해볼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는 마음의 준비가 되면, 좋은 환경을 마련해 반려인과 함께 하나의 생명체를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유기견을 입양할 것이다. 그들이 불쌍하고 가여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당연한 입양 방법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돈을 주고 사면 안 되는 것이니까, 평생을 함께할 가족은 돈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니까.
작년 봄 두나를 보내고 많이 힘들어하던 나는 유기견 봉사를 하면서 조금씩 힘을 얻었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그저 한 마리의 개였지만, 어느 순간 정을 붙이고 나니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두나가 보였다. 하품을 하는 표정, 지나가는 차의 경적 소리에 놀라 겁먹는 표정, 하품을 하다가 멋쩍은지 지긋이 쳐다보는 표정. 지쳐서 털썩 주저앉거나 똥을 싸는 모습까지도. 아마도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강아지 별에 있는 두나를 계속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겉모습은 하나도 두나와 닮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두나가 많이 그립다. 꿈에 나와주지 않는 것이 애석하고 어쩔 때는 밉기까지도 하다. 하지만 두나 덕분에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의 기쁨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동물권이라는 주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처음이라 서툴고 해 준 것도 많이 없는 내게 두나는 참 많은 것을 주고 갔다.
앞으로도 나는 동물권을 공부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할 것이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애쓰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먼저 간 두나를 추억하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