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요즘 몸은 좀 어떠세요?’
라고...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시례 아저씨.
아저씨 생각을 합니다. 사는 동안 늘 외로우셨던 아저씨. 아저씨를 떠올릴 사람이 나 말고 있을까요. 하늘에서도 여전히 외로우신 건 아니겠죠. 애니메이션 코코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잊힌 거야. 이승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저승에서도 사라지게 돼. 최후의 죽음이라고 하지’ 그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아저씨를 더 자주 생각하려 했는데 그때뿐 이번에도 정말 오랜만에 아저씨를 떠올리고 있네요.
우리 기억하시죠 아저씨. 아저씨에게 우리는 어떤 인연이었을까요. 자원봉사자와 피 봉사자? 저는 아저씨의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오래전 나와 함께 아저씨를 찾아뵈었던 친구들은 모두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에요.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남을 가졌는데 어느 날 이렇게 모여 늘 먹고 마시지만 말고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시면 한 번씩 찾아가 도움을 주면 어떨까 하고 시작했던 일이었어요. 마침 친구 중에 고향마을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있어 아저씨를 알게 되었던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죠.
임대로 살고 계신 기울어져가는 한옥은 언뜻 보기에도 언제 쓰러질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집이었어요. 그런 곳에 아저씨가 살고 계셨어요. 그 작은 집의 방 한 칸에요. 친구들과 함께 아저씨네 방안을 도배했던 날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아저씨를 위한 첫번째 우리의 일은 아저씨가 교회에 가시는 주말을 이용해 담배연기로 누렇게 빛이 바랜 방안을 도배하는 것이였죠. 그리고 깨끗이 정리된 집안에서 준비해 간 코펠과 버너를 이용해 다 함께 저녁밥도 지어먹고요.
그때 아저씬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도 처음이고, 함께 밥을 지어먹는 것도 처음이라며 오늘이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날이라고 했던 기억나요.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환해진 방안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그동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 이후 한 달에 한 번 아저씨를 찾아오겠다 약속 했는데 도배 이후엔 특별히 한 일이 없네요. 한여름 무더위를 견딜 선풍기 하나 없어 친구들이랑 함께 사러 다녔던 기억과 TV로 보았던 피자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셨는데 입맛에 맞지 않아 한 조각 밖에 못 드셨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아저씨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란 게 먹고싶은 음식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다 드리며 함께 한두 시간 티브이를 보다 오는 게 다였죠.
그런 날이 이어질수록 함께 하던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나중엔 아저씨를 소개해준 친구와 둘이서만 겨우 시간을 맞춰 찾아갔지요. 버스가 자주 안 다니는 곳이라 둘이 이야기하며 긴 시간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아저씨네 집 방문하기를 꺼렸던 이유는요. 물어보진 않았지만 방안 가득 자욱한 담배연기 때문도 아니고, 술에 취하신 아저씨 모습 때문도 아닐 거예요. 아저씨네 방안을 도배했을 때처럼 우리가 몸을 움직여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서로 나눌 만한 이야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함께 TV만 보고 있는 시간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TV 속 이야긴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아저씨께 내성적인 제가 이것저것 묻고 답하는 게 다였지요.
그때 아저씨는 무척 외롭고 삶의 의욕도 없어 보였어요. 관심을 가져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힘이 되지 않을까, 내가 아저씨라면 그럴 거 같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려 노력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저는 제 의견으로 시작했던 일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화드릴 때마다 힘들다 하시면 어떡하지 아프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제가 전화할 때마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늘 저를 안심시켜주지요. 아저씨가 저의 걱정을 알아채신 걸까요.
겨울이면 난방비가 부족하단 아저씨 말씀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팔았던 기억도 나요. 혼자서 재료를 사고 카드를 만들어 친구들이랑 아는 분들께 강매해서 마련한 돈이 겨우 15만 원쯤 됐었죠. 큰돈은 아니지만 혼자 돈을 마련한 경우는 처음이라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부족한 돈이지만 그 겨울 조금이라도 따듯했기를 바라요.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이따금 아저씨와의 인연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아저씨가 가장 행복했던 그날 사진을 찍어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아저씨 모습은 마르신 편이었지만 크고 선한 눈을 가진 미남이셨죠. '나도 가수다'에서 본 임재범 이란 가수가 아저씨를 참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사진은 없지만 아저씨가 보내주신 연하장이 있군요. 아저씨네 집을 방문했던 날 방청소를 하면서 아저씨 노트를 슬쩍 본일이 있습니다. 내용은 읽지 않고 글씨만 슬쩍 보았는데 연하장에 적힌 글씨와 같아요. 노트 빽빽이 적혀 있던 아저씨의 글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적혀있었을까요. 나와 친구들 이야기도 적혀 있었을까요? 아저씨는 어쩜 글을 쓰고 싶어 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노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결혼 후 친정에 갔다 남편과 함께 찾아갔었죠. 암투병 중이었고 보호자가 없어 힘들었다 하셨죠. 그 후 병원에 계실 때 몇 번 통화한 이후 완전히 소식이 끊겼을 때 수소문 끝에 아저씨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어요.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세상이 또 있다 생각하느냐고요? 글쎄요.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합니다. 지난해 겨울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추운 땅 속에 계실 어머님을 걱정하는 남편에게 “지금 아버님이랑 먼저 떠나신 아주버님을 만나 반가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거야”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슬플 거 같아서요.
세월이 흘러 저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겠죠. 그때 우리 반갑게 다시 인사해요.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해요. 사는 동안 한 번씩 떠올릴게요. 그곳에서 무사히 잘 계시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