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보이지 않던 운세가 눈에 확 들어왔다. 02년생? 둥둥 뜬 기분? 모든 02년생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닐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 우리 집에서 만큼은 정확한 운세다. 왜냐면 엊그제까지 재수생이던 연두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붙어 있던 학교 이름이 현실이 될 줄이야. 수능, 실기, 코로나, 삼중고 앞에서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꿈은 이루어진다.'
연두 어릴 때가 생각난다. 연두가 태어날 때쯤에도 은물, 프뢰벨부터 시작해 한 세트에 몇 백씩 하는 교육용품이 넘쳐났고, 교구를 판매하시는 분들은 수시로 아기가 있는 집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분들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연두는 도형이며, 숫자며, 색깔도 모르는 아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빠지곤 했다. 다행히 집에 돌아오면 '에이~ 설마 교구 세트 없다고 그런 것도 모를까. 색종이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벽에 걸어놓은 숫자판도 있잖아.'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 프뢰벨에서 별책부록처럼 나눠주던 대형 병풍 책 한 권. 프뢰벨 우수 고객이던 이웃집 친구에게 부탁해 구입을 했다. 그 책으로 터널도 만들고 아지트를 만들며 놀았는데 얼마나 만족스럽던지. 가성비 뿜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사교육을 안 했느냐 그건 아니다. 동생이 태어나고 글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연두를 위해 한글나라도 사주고, 중고책들도 사줬다. 좀 더 커서는 튼튼 영어도 하고, '곰돌이'라는 학습지도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영어랑 수학 학습지도했다. 어느 날부터 두녀석 다 공부하기 싫어해서 과감히 끊어버렸다. 남은 초등시절은 놀다가 중학교 갔는데 첫 시험을 본 연두가 학원에 보내달라며 엉엉 울었다.
때가 됐다 생각한 나는 아이를 데리고 학원가엘 나갔다. 방문하는 학원마다 하나같이 '왜 이제 데려왔어요?' 하고 물었다. 유치원 때부터 하루 종일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공부할 녀석이면 하고 싶은 날이 올 거라 믿었고 그때가 온 것인데 학원들이 내게 보인 반응은 좀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내게 보인 시선들은 무심한척 하기가 힘들었다. 내 멍청한 아집으로 아이들을 망친 건 아닌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이 훅 밀려들고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연두는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 애들은 다 아는 내용이라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 안 듣는데 나는 모르니까 열심히 들어."라고 했다. 조금씩 오르는 점수를 보니 자신감도 생겼고,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장학금도 받았다. 거기까진 정말 좋았다. 연두가 자신있고 잘하는 과목은 수학과 과학인데 연두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다. 어느 날 내신 따기 힘들어 하던 연두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성적이 더 떨어진다며 펑펑 울었다. 그 후,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정시에만 올인했다. 고3이 된 후 코로나 때문에 힘들긴 해도 재수를 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실기도 탄탄하다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대입엔 시험 운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가 스무 살이라고 하면 "대학생이겠네?"하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그 '대학생'이란 단어가 참 불편했다. 재수한다는 사실이 부끄럽진 않은데 "네"라고 대답하면 거짓말하는 것 같아 굳이 "재수생이에요."라며 고쳐 말하곤 했다. 그러면 다들 당황해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분은 "어느 대학에 넣었다가 떨어졌어요?"하고 묻는 이도 있었다. 나도 스무 살이라면 무심코 대학생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스무 살이라고 하면 거기까지만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가 실기를 준비하는 학원에 재수생은 넘쳤고, 삼수생은 흔했으며, 사수생도 있었다. 씁쓸했다. 얼마나 맘고생들 했을까. 코로나 시대 수험생들은 맘편히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없다. 수능 공부를 하던 독학재수학원에서는 그나마 고맙게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해 줬는데 실기학원에선 마스크를 아예 벗을 수 없도록 하고, 식사 시간을 최대한 근처 회사원들과 겹치지 않도록 정해주었다. 아이는 한 끼는 굶고, 한 끼는 사람 없는 식당을 찾는 날이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부와 실기 준비보다는 코로나 때문에 늘 긴장이 돼서 한시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 가족 모두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햇님이에게 자꾸 조심을 시키게 됐고, 녀석은 녀석 대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정시 가군 실기와 면접을 보고, 며칠 후 바로 발표가 났고 최초 합격자가 되었다. 나군, 다군도 훌륭한 학교지만 가군으로 지원한 학교는 연두에게는 꿈의 학교라 망설임이 없다. 이제 결정됐다. 살얼음 같던 길이 갑자기 레드카펫이 된 기분이고, 연두랑 남편이랑 마주 볼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났다. 쉴 새 없이 수다가 계속 이어졌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친구들도 많고 발표가 끝나지 않은 친구들이 많다. 결과를 기다리는 친구들에게는 연두의 소식이 초조함을 더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조심히 들뜬 마음을 즐기는 중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에 있어서 오늘의 이 기쁨은 작은 산하나 넘은 일일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평소처럼 무덤덤 해지는 날도 분명히 올 것이다. 기대완 다르다고 속상해 하는 날도 오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냥 실컷 웃고 붕 들떠서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즐겨야지. 내일은 햇님이가 2주 만에 집에 오는 날이다. 네 식구 총출동 트레이더스에 가서 먹고 싶은 거 하나씩 픽해와서 파티를 해야지.우리 연두의 새로운 출발과 올해 또 고3이 되는 우리 햇님이를 위하여 내일은 연두랑 남편이랑 셋이 술도 한잔 해야겠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