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지 3개월 후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 임신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려 6개월쯤에야 알게 됐다. 2~3일에 한 번씩 통화하는 어머님은 통화를 할 때마다 매번 아이 소식 없느냐 묻곤 하셨다. 네 명의 시누 중 세 명도 가까이 살고 있어 자주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좋은 소식 없느냐 물어보셔서 나는 그 6개월이란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입덧이 시작되고 내 코는 개코를 능가하는 성능의 후각을 가지게 되었다. 밥 냄새, 김치 냄새, 냉장고 냄새, 자동차 냄새, 샴푸 린스 냄새.. 각종 냄새들이 얼마나 나를 괴롭히던지.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남편더러 왜 빨리 전기차를 안 만드냐고 닦달했던 기억이 난다. 식사 때마다 풍겨오는 옆집의 음식 냄새는 그 메뉴를 정확히 파악할 지경이었다. 2층인 우리 집은 창을 열어놓으면 지나가는 자동차 매연냄새로 숨쉬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아파트 안에 동산이 있었다. 손수건으로 코를 싸매고 올라가 하루 종일 내려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작은 산과 맞먹을 만큼 큰 동산은 입덧으로 고생하는 나를 유일하게 품어준 안전지대였다. 오래오래 기억해두려고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요즘 규모도 크고 멋진 정원을 가진 아파트는 많지만 이 정도 규모의 뒷동산을 가진 아파트를 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출산을 앞두고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기 위해 김해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그 사이 거실 겸 부엌에 있던 홈통에 문제가 생겨 윗집의 폐수가 홈통을 타고 내려와 악취를 풍겼다. 남편은 윗집에 올라가 이야기를 했으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도 우리 집처럼 집주인이 아니었다. 집주인은 지금 미국에 있는데 한 달 후쯤 돌아온다고 했단다. 한 달 후면 이 집에 신생아가 와 있을 텐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파트 단지 내 인테리어 하시는 분을 불러 공사를 하고 영수증을 잘 챙겨두었다. 공사는 잘 되어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윗집 주인은 공사비를 줄 수 없다고 펄쩍 뛰었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이 정확한지 믿을 수 없을뿐더러 자기 집을 주인 허락도 없이 건드렸으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는 전세 사는 사람이라 우리 집주인이랑 이야기해야겠단다.
이 문제로 남편은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은 게 아니었다. 돈보다 맘이 많이 상했다. 일이 해결되지 않고 지루하게 늘어졌다. 결국 우리 집주인과 윗집 주인이 만나 해결을 보기까지 남편의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이번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겨우 소주 한잔을 마시곤 집으로 돌아오다 정신을 잃고 계단을 굴러 얼굴이며 팔다리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출산 후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이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우리도 집을 사자고 했다. 결혼 전 나는 월급은 엄마께 드리고 용돈을 받으며 지냈고, 엄마가 그간 모아주신 돈으로 결혼했다. 따로 내가 가진 돈이라곤 혼수품을 사고 남은 돈뿐이었는데 그 마저도 다 써버리고 없었다. 결혼할 당시만 하더라도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갔다가 졸업을 눈앞에 둔 상태로 결혼을 해서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그 돈으로 생활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시 취직한 지 1년 채 되지 않은 상태라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는 것도 딱하고, 우리 집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시누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 하나를 추천받았다. 프리미엄이 붙긴 했지만 지금 막 분양 중인 아파트라 당장 목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계약 당시 큰 애가 백일쯤의 일이다.
그러나 재개발 아파트라 진행이 더뎠다. 백일이던 아이가 돌이 지나고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빨리 허가를 내주십사 항의를 한다며 조합원들 모두 시청 앞으로 모이라고 연락이 왔다. 둥둥둥 둥.. 북을 치며 농성을 하는데 가만 들어보니 웃음이 큭큭 나왔다. '의왕시청' 앞에서 자꾸만 '안양시장님'을 찾는다. 전문 데모꾼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정말 여러 가지 직업이 많구나. 그 아파트 공사는 결국 늘어지고 늘어져 추가 분담금을 내고 그사이 우리는 두 번의 이사를 한 후. 큰 아이 백일 때 계약했던 그 집에 백일이던 아이가 8살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야 완공이 되어 입주할 수 있었다. 이 집은 나중에 우리 부부 생애 첫 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