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둘째가 학교에서 알록달록한 점토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왔다. 삶으면 지우개로 변하는 요술 점토였다. 나는 둘째가 학원에 간 사이 아이를 기쁘게 해 줄 생각으로 요술 점토를 삶아놓기로 했다. 한참 집안일을 하다 불현듯 다용도실에 올려놓은 점토 생각이 났다. 후다닥 달려가 보았으나 이미 뜨겁게 달구어진 냄비 속에는 반쯤 숯검댕이가 된 지우개가 원망하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큰 일이었다. 둘째가 보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정신이 아찔해지고 무서워서 식은땀이 났다. 큰 애였다면 사과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둘째는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었다. 보나 마나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내 혼을 쏙 빼놓을 것이었다. 나는 녀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달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먼저 선수를 쳐서 바짝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선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를 준비했다. '햇님아 엄마가 지우개를 삶았는데 다른 일 하느라 깜빡 잊고 태워버렸어. 미안. 용서해줘. 너 화낼까 무서워서 엄마 집에 못 있겠어.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랑 행복하게 잘 살아. 네가 용서해주면 그때 집에 들어갈게. 안녕. 엄마가' 거실 바닥에 편지를 펼쳐 두고 집을 나오니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오면 눈에 잘 띄려고 아파트 부근을 서성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둘째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가 수고롭지 않도록 멀찍이 다가가며 이름을 불렀다. "햇님아 미안. 근데 엄마 너한테 미안해서 집에 못 가겠어." 아이는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소리를 빽 지르면 어쩌나 긴장하고 있는데 한 손으로 내 옷자락을 잡고 집을 향해 끌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이를 따랐다. "엄마 용서해주는 거야? 미안. 엄마가 더 이쁜 걸로 사줄게. 알았지? 약속" 그날 나는 그렇게 위기를 모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엄마라는 사람이 할 짓인가 너무 한심스럽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둘째에게 그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하 동문이다. 철도 없고 부족한 엄마였으며 아이 키우는 일에 서툴렀다. 자잘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로서 잘하는 행동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엄마가 좌충우돌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랐다. 스물한 살, 열아홉 살, 이제야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조금 서툴러도, 완벽하지 않은 엄마라도 괜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