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아버님은 내가 결혼하던 해 팔순이셨고 명절이면 할아버지뻘 세 명의 사촌 형님 집안에서
설에는 새배를 해야해서 추석엔 다함께 성묘를 해야해서 아들 손자며느리를 대동하고 집안의 어른이 계신 우리 시댁으로 오셔서 다 함께 점심을 드셨다. 사촌 형님네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면 네 명의 시누 가족들과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 한 형님네(손위 동서는 친정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두 딸들이 사위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므로 형님과 나, 두 명의 며느리가 준비해야 할 명절 음식은 어머어마해서 명절 전 날은 형님과 함께 거인 놀이(소꿉놀이의 반대)를, 명절 당일부터는 잘 나가는 대박집 식당 놀이를 한다고 혼자 상상하며 곧 막을 내릴 이 시대 마지막 명절 문화를 경험하는 중이라 생각하며 명절을 보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어머님 아버님 살아생전에 우리 시댁의 명절 문화도 서서히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너무 견고해 보였지만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 누구도 원하지 않은 명절을, 서로 눈치 보며 미루었던 것은 아닐까. 먼저 오지 말라할 수도, 먼저 오지 않겠다 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몇 해 전 결혼한 질부(조카며느리-나보다 세 살 아래다.)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이했던 추석날 울었다고 했다.
많이 놀라긴 했겠지만 성격이 너무나 밝아 울기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나랑 형님 둘이서 준비했던 명절들에 비하면 그래도 질부 때는 많이 편해졌고, 질부가 온 이후 명절 손님들이 질부 눈치도 보는 듯 느껴졌지만 질부도 나름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명절이라 많이 힘들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