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명절

역대급 편안한 명절

by 오늘을 살다

이래도 되나 싶게.

결혼 후 처음 경험해 본

낯선 명절을 보냈다.


조카랑 질부랑 남편이랑

밤마실까지 다녀오고 말이다.

꿈인가 생신가.


형님 부부,

우리 부부,

조카 부부, 귀여운 손자.

끝.


세상에...

아직도 믿기지 않는

역대급 조촐한 명절이었다.


결혼 상견례 자리에서

"인자, 설거지할 사람 들어왔다."

라는 말이 실감 났던 첫 명절 이후로

상상만 해오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시아버님은 내가 결혼하던 해 팔순이셨고 명절이면 할아버지뻘 세 명의 사촌 형님 집안에서

설에는 새배를 해야해서 추석엔 다함께 성묘를 해야해서 아들 손자며느리를 대동하고 집안의 어른이 계신 우리 시댁으로 오셔서 다 함께 점심을 드셨다. 사촌 형님네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면 네 명의 시누 가족들과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 한 형님네(손위 동서는 친정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두 딸들이 사위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므로 형님과 나, 두 명의 며느리가 준비해야 할 명절 음식은 어머어마해서 명절 전 날은 형님과 함께 거인 놀이(소꿉놀이의 반대)를, 명절 당일부터는 잘 나가는 대박집 식당 놀이를 한다고 혼자 상상하며 곧 막을 내릴 이 시대 마지막 명절 문화를 경험하는 중이라 생각하며 명절을 보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어머님 아버님 살아생전에 우리 시댁의 명절 문화도 서서히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너무 견고해 보였지만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 누구도 원하지 않은 명절을, 서로 눈치 보며 미루었던 것은 아닐까. 먼저 오지 말라할 수도, 먼저 오지 않겠다 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몇 해 전 결혼한 질부(조카며느리-나보다 세 살 아래다.)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이했던 추석날 울었다고 했다.

많이 놀라긴 했겠지만 성격이 너무나 밝아 울기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나랑 형님 둘이서 준비했던 명절들에 비하면 그래도 질부 때는 많이 편해졌고, 질부가 온 이후 명절 손님들이 질부 눈치도 보는 듯 느껴졌지만 질부도 나름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명절이라 많이 힘들었을 거다.


"숙모님. 우리도 이제 남들 같은 평범한 명절을 보내네요. ㅎㅎㅎ"


저녁 설거지를 마친 후 함께 밤마실 하던 질부가 달빛 아래서 행복하게 웃는다.



명절 당일.

비가 온다 하여 아주버님 지휘 하에

어제 오후에 산에서 차례를 지내고 내려온 덕분에

아침을 먹고 천천히 형님 댁을 나섰다.

그러나 안동 계신 큰 시누네 들리느라 늦어져

시누네서 출발, 화장실만 한번 들렀을 뿐인데

상경하는데 7시간 넘게 걸렸다. 헉헉헉..


이제 귀성길, 귀경길만 어찌 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에고에고 나의 명절 소망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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