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동생

by 오늘을 살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먼저 떠난 동생이 그리울 때면

나는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른다.





그날,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가신 부모님에게선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산자락 끝 희미한 가로등 아래 어른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어른들은 무슨 일인지 알고 계실 것 같아 서둘러 걸었다. 내가 다가서자 웅성이던 어른들은 서둘러하던 말을 멈추는것 같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공기. 나더러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만 했다. '동생이 많이 다쳐서 다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병원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라면 빨리 깨기를 바랐다. 아버지와 나. 둘만 들어갔던 영안실에는 동생이 그날 아버지가 입고 계신 셔츠랑 똑같은 셔츠를 입고 누워 있었다. 우리 집에 이 셔츠가 두 개 있었던가. 꿈인 것 같은데.. 정말 꿈만 같은데.. 깨어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엄마는 충격이 너무 커 몸을 가누지 못해서 병원에 계시고 모두 화장터로 갔다. 엄마가 알면 힘들어 할까봐 화장터에 간다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동생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네모난 공간으로 들여다 보내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나에게 누군가 음료수 뚜껑을 따서 건네주어 마지못해 한 모금 삼켰다.

"동생이 죽었는데 니는 음료수가 넘어가나."

나를 향해 분노하듯 내뱉는 아버지 목소리. 생전처음 보는 아버지 모습.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아버지 같지 않았다. 너무너무 당황하고 놀랐지만 억울하거나 속상하진 않았다. 알 것 같았다. 나에게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처럼 쓰러질 수도 없었던 무너진 아버지 마음. 아들 잃은 아비가 애써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는 중이었다.




그날은 부모님이 동네 어른들과 당일로 무슨 절엔가를 다녀오시는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삼 남매는 방학이라 놀러 온 외사촌이랑 집에서 카드게임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우린 너무 즐거웠다. 같은 마을에 사는 동생 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오기 전까지. 친구가 찾아왔는데도 동생은 평소와는 다르게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무척 나가기 싫어했다. 나는 카드게임이 너무 재밌기도 했고, 오랜만에 찾아온 외사촌이랑 놀고 싶어 그러려니 생각했다. 동생 친구는 동생이 가기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게임에 참여하지도 않고, 한자리에 꼿꼿이 서서 한참 동안 동생이 게임을 빨리 끝내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결국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선 동생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후 나는 그 아이가 '저승사자처럼' 가지도 않고 앉아있었다 생각했다.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골이 났다. "너 지금 빠지면 다음부턴 안 끼워 줄 거다."라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게 내가 동생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집집마다 오토바이가 한 대씩 있었다. 주로 아저씨들이 타고 다니셨고, 간혹 아버지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동생의 친구도 그런 아이에 속했는데 내 동생은 우리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열쇠를 주지 않아서 배우질 못했다. 우린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중3. 동생은 우리 가족이 모르는 사이 오토바이 타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동네 어른들과 하루 종일 집을 비우신 그날. 그날이 기회라 생각했던 동생 친구는 동생에게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놀러 가자고 했던 것이다.

익숙한 솜씨로 속도를 내어 앞을 내달리던 친구의 뒤를 따라 동생이 탄 오토바이는 고개를 넘어 휘어진 내리막길이 나오자 핸들을 제때 꺾지 못하고 세워진 전봇대를 향했다.

.........

쓰러진 동생을 그대로 두고 도망가버린 친구. 도로를 지나가던 택시기사가 동생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을 땐 이미 늦었다고 했다. 헬맷을 썼더라면,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살아있었을까.


엄마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누웠던 응급실에 동생 친구도 있었다. 어디를 다쳤는지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지금도 왜 응급실에 있는지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정신이 든 엄마가 동생 친구에게 왜 혼자만 놔두고 갔느냐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다. 엄마의 동네 친구이기도 했던 친구 엄마는 우리 엄마를 밀쳐내며 자기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 일이 있는 후 나는 그 집 사람들 보는 일이 힘들었다. 엄마 아버지도 한동안은 그 아줌마 아저씨와 거리는 두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해 지나자 다시 사이좋은 이웃이 되어 있었다. 어쩌겠는가. 작은 시골 동네 안에서 평생 원수처럼 지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피 흘리는 친구를 두고 떠났던 그 아이도 무서웠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였다. 한 번씩 그 아이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내 동생도 살았으면 저만큼 컸겠지 하는 생각이 났다. 엉긴 매듭을 풀려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야 했다.


동생을 산에다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마음이 급했다. 같은 해. 동생보다 석 달 먼저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산에 묻고 내려왔던 날 사람들이 할머니 옷가지며 할머니 쓰시던 물건들을 모두 불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 내 동생의 흔적도 그렇게 사라질까 봐 걱정이 됐다. 동생 물건들. 동생 앨범들. 나는 집으로 뛰어들어와 그것들부터 찾아서 얼른 내 방에다 숨겨놓았다.


초등학생 때 몰래 동생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다. 방학숙제로 써낸 동생의 일기장은 정말 기가 막혔다. 녀석이 내 일기장을 그대로 베껴 썼던 것이다.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아는 체를 못했다. 아는 체하는 순간 나도 녀석의 일기장을 봤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 같아 분하지만 혼자 쌤쌤으로 여기고 넘어갔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여느 집 남매들처럼 속고 속이고 아웅다웅 지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감췄뒀던 동생의 사진앨범과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 속에 '나는 우리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 아버지도 아니고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틈만 나면 으르렁 거리며 싸웠던 누나가 좋다고? 일기장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있었다. 가슴 속이 쿵 면서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나랑 막내 동생과 달리

우리 동네 골목대장에다 친구도 많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인기가 많았다. 동생이 떠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동생의 여자 친구라며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친구랑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엄마는 그 아이를 보자 동생이 생각나 또 우셨다. 나는 우는 엄마를 보면서 안 와도 되는데 왜 찾아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가깝지 않은 길을 애써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순 없어 집으로 들어오라 했다. 그 아이가 먼저 나에게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에요. 언니 사진을 가져온 적이 있어요. 언니 사진을 보여주면서 '우리 누나야 예쁘지?'라고 묻기도 하고 누나가 좋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숨쉬기도 힘들 만큼 가슴이 아팠다. 누가 송곳으로 갈가리 찢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가슴 아프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그때 처음 실감했다. 다섯 살 어린 막냇동생만 챙겨주고, 두 살 차이 나는 녀석과는 으르렁 거리며 참 많이도 싸웠었다. 갑작스레 녀석을 떠나보낸 후 내내 못해준 것만 생각나 안 그래도 너무 후회되고 미안해 힘들었는데, 속 좁고 못난 누나를 동생은 뒤에서 내내 저렇게 좋아하고 있었구나. 좀 더 잘해줄 걸, 좀 더 양보할 걸...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 순 없었다. 내게 기회는 다시 주어 지지 않았다.


한동안 동생이 꿈속에 나타났다. 꿈속에선 동생이 죽은 게 아니라 친구 집에 며칠 놀다 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동생을 부둥켜안고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며 펑펑 울다가 엄마 아버지께 달려가 동생이 왔다고 알렸다. 그런 꿈을 몇 번이나 꿨는지 모른다. 어떤 꿈에는 내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동생이 나타나 보디가드처럼 나를 구해주었다. 꿈속에서 보고 싶던 동생을 만날 수 있어 좋았지만 잠에서 깨면 엄마 아버지 마음 아프실까 봐 꿈속에서 동생을 봤다는 이야기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우리 집에서는 동생 이야기가 금기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청소를 하다 내 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동생의 사진앨범이 안방 문갑 속에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엄마가 가져가신 것 같았다. 동생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저리셨을까. 엄마도 혼자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1991년 8월 11일. 대야.. 네가 떠난 후 너 없이도 우리는 30년을 살았구나.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풋풋한 16세 소년의 모습으로 살아있는 너. 잊을 수 없는 내 동생. 오늘은 네가 많이 그리워 너와의 마지막 날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안녕. 내 동생.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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