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지...

by 오늘을 살다

엄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아니 전혀.

집에서도 하루가 금방 가.

오늘은 엊그제부터 보던 영화도 아직 다 못 봤고,

지금 읽고 있던 책도 다 못 읽었어.

이렇게 음악 들으며 콩나물 다듬으니까 행복하다...


엄마는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네가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팔 벌릴 때,

엄마 손 잡으려고 손 내밀 때,

웃으면서 '엄마'라고 불러줄 때,

내 옆에 착 붙어 앉을 때,

같이 맛있는 거 먹을 때,

같이 TV 볼 때,

점점 낡아가는 우리 집이지만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 때,

너랑 햇님이가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웃을 때,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

재밌는 책을 읽을 때,

단풍지는 나무들을 볼 때,

길가에 핀 꽃들을 볼 때,

싱싱한 야채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볼 때,

길가에 풀꽃과 나무 이름 맞출 때,

나무들이 바람이 들려주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볼 때,

아이들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 들을 때,

기분 좋아지는 음악 들을 때,

너희들이랑 함께 차 타고 이동할 때,

아빠가 너희들에게 둘도 없이 다정한 아빠라 느껴질 때,

엄마는 그런 별거 아닌 거에 기쁘고 행복한 기분이 들어.

나는 그 별거 아닌 것들을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근데도 엄마는 종종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보잘것없는 나의 행복들이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작은 점 같아 보일 때가 있어.

그렇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또 있더라.

아니 아주 많아.

난 그런 사람들이 참 불편해.


그들을 만나면

내 소박한 옷차림이 추레해 보이고,

아빠랑 성수동 골목에서 함께 샀던 브랜드 없는 수제 가방도 보잘것없어 보이고,

평소에 고맙고 든든한 우리 집 찌그러진 자동차가 작아 보이고,

나이가 드니 또래 친구들 다 한 두 개씩 차고 다니는 금목걸이, 금반지, 금팔찌를 보며

허전한 내 손가락, 내 손목, 내 목이 허전해 보이고,

뭔가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너무 정체되고, 쓸모없고, 능력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부족해만 보여 마음이 불편해.

그들이 옳은 것 같고, 현명한 것 같고,

나는 나이만 먹었지 철없는 어른인 체,

동화 속에나 살고 있는 비현실적인 인간 같아서.


근데 이번에 너랑 들렀던 마을 책방에서 구입했던 책 말이야.

엄마 재밌어? 하고 물었던.

엄마가 고른 연애 소설책 말고,

네가 읽고 싶다고 골라놓고 바빠서 못 읽은 그 책.

그 책 읽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했었는지 생각하는 중이야.

결혼 전 느꼈던 자유롭고 행복했던 그 기분이 점점 되살아 나.

지금도 행복하지만...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너와 햇님이가 빠져나간 내 남은 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요즘 그게 고민이 있었거든.

그 책을 읽으니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네 덕분이야.

고마워.


건강하게 오래 함께 해주는 것 말고,

행복한 엄마가 될게.

남들 보기에 좋은 옷 말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답게,

그렇게,

그렇게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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