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게, 재미있게!

by 오늘을 살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사소한 기쁨들을 꽁꽁 얼어붙게 했지만 그 와중에도 햇님이네 학교는 보일 듯 말 듯 자주 꿈틀꿈틀거렸다.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진행되는 재능 나눔과 각종 동아리 활동, 응원의 함성 없이 소수의 인원만 참여해 로테이션으로 치러진 체육대회, 직접 촬영한 음원 영상을 제출하여 예선을 거치던 음악대회들은 모두 결승전 모습만 교실 안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한다. (그 외에도 각종 행사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기록함)


올해의 마무리 행사인가? 이번 주에는 학교 축제 있다. 코로나로 대폭 축소되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맛보는 3일간의 축제. 각종 동아리나 모임에서 소소한 체험거리들이 있나 보다. 마스크를 쓴 페이스페인팅, 짧은 영화 상영 등등.


'하고재비' 우리 햇님이 온몸이 들썩들썩거린다. 동아리에 카페를 열자했더니 2학년 중엔 호응하는 친구가 없어 햇님이가 총대를 메고 1 학년 후배들과 진행을 하기로 했다.


메뉴를 정하고, 준비물을 체크하고, 판매할 양을 예상하고, 그외 필요한 것들을 적었다. 후배들이 디자인했다는 메뉴판과 안내문에는 입금 가능한 계좌번호와 '모든 음료는 개인 텀블러에 담아드립니다.','부스 안에서 음식물 섭취는 불가능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카페를 준비하며 가장 오래 고민했던 것은 판매 가격.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없어 포장까지 준비하려다 보니 원가가 점점 올라갔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수익을 책정하여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비싸다고 했단다. 결국 수익이 적더라도 기념할 만한 추억 만들기를 최우선에 두고 가격 결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다음은 여러 가지 재료와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씻고, 자르고, 섞어 미리 메뉴들 만들어 보기. 최대한 맛있게 비율을 바꿔보며 레시피를 만드는 우리 햇님이. 진심 열심이다. 이 정도면 골목식당 하나 차려도 되겠어. 나는 햇님이가 만들어준 음식들에 맛을 평가해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바나나 우유는 예상 가능한 맛이었지만 카나페는 싱싱한 토마토와 마요네즈로 버무린 참치와 양파 맛이 잘 어우러져 상큼하고 고소했으며, 밀크티는 중독되고 싶은 맛이라고 할까. 인기 좀 있겠구나.


이제 마무리할 시간. 우유, 참치, 토마토, 바나나, 다진 양파, 각종 재료들은 얼마 전 득템 한 대형 캐리어에 넣고, 전기주전자, 믹스기, 도마, 숟가락, 테이블보 등등은 커다란 가방에 한꺼번에 담았다.

짐이 너무 많고 무거워 어쩌나 걱정했는데 먼저 학교에 와 있던 친구들이 후문까지 나오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챙길 것도 많은데 '좀 있다가... 좀 있다가...' 하며 서두르지 않는다.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늦을까 속이 탔다. 얼른 기숙사 들어갈 짐도 챙기고 준비를 하라고 하루 종일 잔소리를 했건만 출발할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제 시간에 혼자 짐을 챙기기엔 역부족이라 내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가져가야 할 옷이 보이지 않아 이곳저곳 찾아 헤매이며 미리미리 준비해야했다 말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먼저 나서면 서둘러 따라나서겠지 싶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놓고 어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준비물을 체크하던 녀석이 엄마 때문에 준비물 체크할 시간이 없어서 후추가 빠졌다고 내 탓을 한다. 실컷 도와줬더니 기껏 하는 말이 그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뒷자리에서 둘이 티격태격하며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운전하던 남편이 햇님이를 향해 "짜식. 너무 귀여워."라며 실실 웃는다. 엄마한테 하는 소릴 듣고도 귀엽긴 뭐가 귀여워. 이 상황에 할 소린가. 햇님이를 향하던 목소리가 남편을 향했다.



축제 첫날. 무사히 잘했을까? 아이들 반응은 어땠을까? 너무너무 궁금해 톡을 보냈다.


"끝났어? 반응 어땠어?"


"매출 십만 원, 재료 부족"


"무사히 진행 했구나. 걱정했는데 장사 잘돼서 재밌었겠다. 점심 못 먹어서 배고프겠네? 빨리 만나서 어땠는지 이야기 듣고 싶다"


"흥!"


'흥!'이라니, '흥'이라니... 헤어질 때 내가 했던 잔소리를 아직 맘에 품고 있는 모양이다.


"실컷 도와줬더니 이 놈 보소!"

sticker st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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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이모티콘을 날렸다.





<에필로그>


둘이서 팔짱을 끼고 준비물을 사러 다니는데 내가 축제 준비라도 하는 양 기분이 들떴다.


"너 대학 가면 축제 때도 이런 행사 많이 하겠네"


"아니. 대학가서는 안 할 건데"


"왜?"


"이런 건 고등학교 다닐 때 해야 '간지'나지!"


"...."



오늘도 폼나는 고교시절을 보내고 있는 울 햇님이.

펜데믹만 아니면 폼나고, 신나는 즐거운 경험 많이 했을텐데 아쉽다.


네 입으로 내년에는 아무것도 안 할 거라 하니 (고3이 되는 만큼 공부에만 열중한다는 것이렸다.) 믿는다.


코로나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다시 못 올 눈부신 너의 학창 시절.

'폼나게' 보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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