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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by 송다니엘


Part I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육성’,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연계한 SMART 00’. 과연 1,2,3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 이름, 숫자 붙이는 것에 대해 애초에 회의적인 나로서는 산업혁명의 차이조차 잘 몰랐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지게 3차 산업혁명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 전에 n차 산업혁명에 대해 알아보자.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산업혁명은 단순히 통신기술의 변화가 아닌 에너지 체계와 결합한 개념이다. 1차 혁명은 증기기관과 인쇄기술의 혁신으로 공교육의 보편화로 인한 숙련된 노동력의 증가, 이와 맞물린 도시화, 전국규모의 시장이 발달한 것. 2차는 석유 개발과 중앙통제형 전력 체계의 구축으로 과밀집된 도시의 해소를 위한 교외 지역/고속도로 건설, 이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꼽는다. 3차 혁명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IT/인터넷)과 새로운 에너지 체계(신재생에너지)의 구축으로 화석연료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장 및 대규모의 노동력을 특징으로 200년에 걸친 회자된 영리주의 전설이 끝나고, 깨끗한 에너지로 생산되는 체계로 바뀌는 것이자, 수직적인 체계가 아닌 분산 자본주의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는 논의 과정의 단계마다 모든 관심사항이 대변되도록 지역사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이데올로기 변화를 의미한다.

즉 요약하면 1차: 석탄+인쇄. 2차: 석유+전기, 3차: 재생에너지+IT/인터넷.


“IT 부문과 인터넷 자체만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이 생성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만나야 한다. 이것이 모든 역사적인 거대 경제혁명의 예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결론은 세계는 3차 산업혁명에 이르지 못했고 남반구 국가 대부분은 1,2차 산업혁명에도 이르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논하는 단순히 정보통신 기술의 사용가능성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것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어떻게 융합되는가에 있다.

이를 현실화하는 방안은 스마트그리드, 분산된 재생에너지, 생산된 에너지를 저장하는 연료전지 기술, 화석연료 기반의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등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서사, 내러티브가 있는지 고찰해본다.


Part II


기후변화. 지겨울 만큼 많이 듣는 이야기다. 국내, 세계 여러 환경운동가들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점점 무감각해진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가 환경을 위해서 육식을 먹지 않는다고 했을 때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을까?’ 혹은 ‘고기 조금 먹는다고 환경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등의 회의적인 생각. 환경을 위해서 군사 시설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이야기에 ‘또 시작했다.’와 같이 환경운동가는 전문시위, 반대 밖에 모른다고 생각하는 관점. 모 환경운동가가 비행기가 화석연료를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로 태양열 발전으로 운행하는 요트를 탄다고 했을 때, 요트운전자는 비행기를 탄다고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기후변화보다는 사실 지구온난화라는 이름으로 어릴 때 처음 접했다. ’97년 교토의정서 사진과 함께 세계 정상이 온실가스를 점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라는 문구를 사회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났다. 과연 세계는 무엇을 했는가. 기실, 92년 리우선언(UN 기후변화회의협약) 이후 30년 가까이 인류는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했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한 이래, 지구의 온도는 1도 이상 올라갔으며, 기온상승에 대한 마지노선이라고 정해놓은 2도(’09년 코펜하겐 회의)에 대해서도 지킬 것이 요원하다. 2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이미 그 전부터 엄청난 탄소 배출 감축을 했어야 함에도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실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가 없었느냐? 단연코 그러지 않았다.

“치명적 수준의 기후변화를 막아야 할 임무를 띤 정부 간 협의체는 20년 넘게 활동해 오면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거의 지속적으로 퇴보의 과정을 밟고 있다.”

“국제 무역협상은 여러 정부가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수출 주도의 신속한 발전모델을 채택하도록 부추긴다. 불안정한 기후는 탈규제를 지향하는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구에 떠넘긴 비용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리우선언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탄소배출량과 지구 온도의 상승의 요인을 자유무역으로 꼽는다. 94년 WTO 출범 이후 세계 각국은 무역에는 강제성을 두어 조항을 위반했을 시 바로 제소할 만큼 강경한 대응을 보이는 반면, 기후변화에는 온건한 대응을 보인다. 그 어떤 나라도 의무적인 탄소 배출량을 지킨 나라가 없다. 잠시 생각해본다. 세계맥주와 와인이 합리적인 가격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최신 전자제품을 사고, 일회용품을 많이 쓰고, 쉽게 버리는 등 나도 어쩌면 이 시스템을 무신경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난한 나라에서 마구마구 생산하고 이를 부유한 국가에 파는 방식의 소비지상주의적. 자본주의 사회. 개인으로서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이것이 이 기후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기후 행동은 우리 경제모델의 핵심을 이루는 근원적인 명제, 즉 성장지상주의와 싸워야 한다.”

“기후 위기가 자본주의 그 자체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성장과 진보의 가능성을 믿는 자본주의적 사고를 흔드는 도전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후위기의 근원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서구 문화의 토대를 이룬 핵심 신화, 곧 자연계는 무한할 뿐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인류는 자연계를 지배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한다.”



책이 출간된 지가 10년 가까이 되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결정적 10년이 정말 코앞이다. 美 오바마 행정부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이야기했지만, 실상 화석연료 채취 회사의 보조금을 끊지 않고 코펜하겐 회의 때 구체적인 실천을 내놓지 못하는 등 결국 이니셔티브만 있고 내러티브가 없었던 것을 생각해본다. 기후 변화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에 대해선 논할 가치도 없다. 바이든 당선자가 파리기후협약 복귀 등 친환경정책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프래킹(셰일가스 생산)을 중단시키지 않고, 화석연료 회사의 보조금만 끊는다는 공약은 어쩌면 그에겐 최선일지는 모르겠지만, 환경을 위한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과연 미국이 그동안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버리고 실제로 실천으로 옮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우리나라의 ‘그린뉴딜’이 과연 이니셔티브에서 그치지 않고 연속성 있는 내러티브가 있는지도 지켜볼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기존 화력발전에 대한 대안으로 천연가스를 내세우고 이것이 공영방송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현실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그래. 얼마나 지구가 망가져야 우리는 전면적인 실천에 옮길 것인가. 호주/캘리포니아 산불, 유례없는 폭우와 홍수, 코로나 19. 같은 방향으로 가면 더욱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재앙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 지는 분명하다.


대공황 당시 뉴딜,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플랜이 엄청난 역할을 한 것처럼. 1차, 2차 산업혁명에서는 둘 다 대규모의 정부투자(공적자금 투자)가 뒷받침 되었기에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대규모 공적자금이 필요한 시점에서 ‘지구를 위한 마셜플랜’이 많이 늦었지만 해야 되지 않을까.


일례로, 남반구의 국가에 대규모 인프라와 기술 이전을 통해 시장 착취의 대상이 아닌 3차 산업혁명의 기틀을 닦는 방안. 이를 통해 혐오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세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후변화, 에너지전환이 이렇게 보니 모든 것을 해결할 열쇠다.


“기후운동의 가장 힘겨운 과제는 심층적이고도 급진적인 경제 변혁의 강력한 추진. 기후변화는 부의 재분배, 해방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현실세계를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도기적인 해방공간을 마련하고, 우리 모두의 안전이 보장된 세계를 구축하는 일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희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 전략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너무 늦기 전에 저 앞에 놓인 경제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곳에 도달할 의지를 끌어 모을 수 있느냐 여부일 뿐이다.”


한편, 혼란스러웠던 조선 후기를 생각해 본다. 시대정신을 앞서 읽어낸 사람들은 성리학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안을 찾은 이들은 미련 없이 자신을 가뒀던 세계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아나갔다.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자기 희생과 순국, 순교 또한 기꺼이 받아들였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스스로 몸을 던진 사람들이다.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사회로 진단하고,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병의 근원이 무엇이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였던 정약용처럼.


‘무릇 재해와 액운이 있으면 서둘러야 한다. 늦춰서는 안 된다.’


“역사가 문을 두드릴 때 대답을 했느냐고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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