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그렇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매년 이상 기후가 온 지구를 덮친다.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요 며칠 사이 중부지방의 폭우도 그 영향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사실, IPCC 등 기후변화에 관한 여러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린 이미 너무 늦었다. 우울한 결론부터 서술해버려서 흥미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관학교 졸업생은 10년간 군에서 의무복무하게 되어 있는데, 딱 1번 5년 차에 전역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허락해주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이다. 이를 위해 지원을 하는데 그 지원서에 나는 아래와 같이 적었다.
“기후변화가 그 어떠한 강력한 정부도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자 인류가 직면한 제일 중대한 위기임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를 위해 전역을 지원하였다.”
2년 전, 군복을 벗고 이 분야를 공부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고. 그러면서도 낙관적인 생각을 버리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분야에 보탬이 되고 싶었으니.
두 학기 동안 여러 강의를 듣고 보고서, 논문 등을 통해 더 다양한 지식을 접하면 접할수록 더욱 확실히 깨닫는다. 되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과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를 한 번 살펴볼까.
독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50년까지 전기에너지 수요에 있어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80%까지 부담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어디까지나 전기 수요가 20%로 줄어든다는 가정하에 세운 계획이다. 전기의 수요는 급증할 것이기에 이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또, 재생에너지의 공급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수적이다. 독일 내 총 전기 수요가 매일 1.65TWh인데, 이를 넉넉잡아 며칠 정도 필요하다는 가정하에 계산하면 10TWh이다. 현재 독일 내 기계식 에너지저장장치를 다 합쳐봐야 0.04TWh, 또, 100만대의 전기차의 배터리에 저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론적으로 0.02TWh, 실제로는 0.003TWh 정도밖에 안 되니, 정말 요원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수소 혹은 SNG 저장장치가 있지만 이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지금까지 본 전기는 그나마 가능성이라도 보인다. 총 에너지 소비량의 20% 안팎의 전기 에너지. 그렇다면 전체에서 절반에 가까운 열 수요는 어떨까. 연간 1500TWh에 달하는 열 수요를 현재는 대부분을 화석연료가 부담한다. 2050년까지 이를 재생에너지가 52%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현재 계획인데, 세부적으로 Heat Pump의 확대 및 수소, 지열 혹은 바이오매스로 발전도 더 한다는 게 골자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열과 운송 분야는 통계조차 부정확하다는 점.
여기까지가 모두 에너지 전환에 있어 선도적이라는 독일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을 국가 지도자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허무맹랑하게 탄소중립을 외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 개인으로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이걸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든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가.
그래. 어렵지만 심각한 문제이니 무어라도 하는 게 보탬이 될 테고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학기 들었던 강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에너지에 관해 어떻게 수학적인 모델을 만드냐는 거다.
교수는 첫 번째 강의에서 에너지 체계를 바꾸기 위해선 기술적인 고려사항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흔히들, 경제학자, 경영학 전공자들은 모델을, Linear Model로 설정해 단순하게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우린 미래를 알 수 없는데, 예를 들어, 당장 올겨울 얼마만큼의 재생에너지가 발전될지 모르고, 에너지 수요가 어느 정도일지도 알 수 없고,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데이터가 없기에 현실로 옮기는 건 굉장히 어렵다며, 단순히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실험,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걸 고려하여, 수학적 모델을 제시하고, 모델과 현실이 맞지 않았을 때 무엇이 부족한지 수정하며 더 현실과 유사한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인은 태양광을 모델로, 북아프리카에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을 만들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모델을 세우기 위해 본인 연구실에서 이 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알아보자.
Cellular Automata.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던 Von Neumann이 이 방법론의 아버지인데 그는 게임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간단한 개념이다. 세 개의 임의로 주어진 박스를 흰색, 혹은 검은색으로 선택한다고 했을 때 총 8개의 가능성이 있고 이 8개로 그다음 iteration을 정하는 알고리즘이다. 이 간단한 모델로 꽤 많은 걸 설명한다. 흥미로운 건 알겠는데 더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써먹느냐다. 교수 예하의 대학원생은 몇 개의 변수를 설정해 뮌헨과 시카고의 도시 개발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역사적으로 도시가 발전했던 양상과 유사하다.
교수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연구는 에너지가 앞으로 어떻게 도시의 발전 방식을 바꿀 것인지에 관한 거다. 중앙 집권적인 에너지 형태에서 분산된 에너지 형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도시의 발전 양상도 바뀌지 않겠냐는 거다. 그리고 이 모델을 싱가폴 혹은 개발도상국의 한 도시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모델이 잘 맞아 들어간다면, 한 도시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다음은 Agent Based Model. 간단하게는 각 agent의 행동을 특정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모델을 만드는 방식. 이는 자율주행에도 많이 적용되고 있다. 교수는 이를 이용해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태양광 패널을 집집마다 설치하는지를 연구했는데, 연구 결과 사람들은 정부 정책보다도 실제로 먼저 패널을 설치한 이웃의 이야기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결과물을 얻게 됐다.
마지막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어떤 모델을 만들 것인가. 대부분의 사회학은 질적 연구 (Qualitative Research)를 진행하는데, 교수는 기후변화, 지정학적 문제 등의 예측 불가능한 문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는 수학적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없을 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이 어려운 일을 풀어낼 수 없을 거라고. 그동안 다뤘던 방법론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거의 마지막 부분을 위해 이 이전에 언급한 것을 배운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여러 몇 가지 변수에 대한 방정식을 만들고, 이를 프로그래밍하는 거다. 엄청 복잡한 수학식은 아니다.
교수가 이야기하기를, 젊은 과학자들은 대개 매우 복잡한 모델을 만들려고만 하는데, 사실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모델이 세상을 더 잘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리는 간단한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는가.
이 방법론의 모델은 CO2 및 가스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풍력과 태양광이 얼마만큼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Land Use restriction, Climatic restriction, cost development 등등을 제한 조건으로 삼는다. 탄소세와 가스 가격의 변동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보급률이 달라지는 걸 보면, 역시 모든 문제는 돈이란 걸 실감하게 된다. 한편, 이 모델에서 저장장치는 아직 고려되지 않았으니, 모델 자체를 발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말고도 기존 산업에서 전기로의 전환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한 모델도 필요할 테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그 이상적 방향은 최종 에너지를 모두 전기의 형태로 전환하고, 재생에너지의 엄청난 설치를 통해 이 전기 수요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환 비율은 연도별로 어떻게 될 것인지, 이에 필요한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할 것이고, 기존의 화석연료 산업과 인프라는 어떤 식으로 소멸될 것인가. 이 모델도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례를 살펴보자.
연간 전기 총 소비량은 독일과 거의 유사하다. 576TWh. 이 중 원전은 158TWh,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TWh인데, 현재 설치된 원전 설비용량은 23.3GW. 재생에너지는 24GW. 설비용량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니 원전은 최대 발전량 대비 77%정도를 발전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는 대략 20% 정도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급증할 전기수요와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했을 때, 탄소중립은 정말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분산된 에너지 시스템을 떠나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린다고 했을 때, 규모의 경제 면에서 현실을 고려하면, 국내에서는 해상풍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적은 땅이지만 건물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만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European Grid와 같은 국제적인 전기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한중일, 에너지 때문만이라도 북한과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며,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까지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것이 원전 없이 탄소중립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현재 정치 상황을 고려했을 땐 요원한 일이겠지만.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실현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모델링과 알고리즘을 만드는 연구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제일 가까운 공부가 아닐까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교수는 강의를 마치며, 젊은 과학자들이 심각하게 이런 걸 고려해야 하며, 본인은 이제 살 일이 얼마 안 남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은 너희가 받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교수의 이야기를 인용해본다.
"If we are not trying to understand it, we will never solve it. We will keep staying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