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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Aug 29. 2022

이탈리아 기행. 로마, 바티칸.

추기경 서임, 역사적 순간에서.


닷새간 로마 중심부에 있는 안셀모 수도원에서 묵었다. 안셀모 성인은 베네딕토회에서 유일하게 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최초로 신성에 대해 이성적으로 해석하려고 한 인물이었다고. 이 수도원은 19세기 말, 교황 레오 13세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베네딕토회를 한곳에 모으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 아빠스가 베네딕토회의 대표라고 한다. 지금은 아빠스가 미국인인데, 그래서 그런지 미국인 수사도 많고 피정을 온 미국 대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신부님은 이곳에서 20년 전에 공부했다.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고. 이곳 학생들만 아는 비밀통로를 통한 쪽문 등 수도원 곳곳의 장소를 알게 됐다. 옆에는 몰타 기사단의 본부 건물도 있다. 그곳은 몰타 영토라고. 그곳 수영장에서 수영도 꽤 했다.


사실, 로마 시내 중심부와 바티칸은 수차례 가봤다. 이번 여행 동안 워낙 덥기도 했고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유명 관광지는 항상 인산인해였다. 그런 한편, 다소 외곽에 떨어진 곳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신부님과 함께 바오로 사도의 흔적을 가기로 하였다. 첫 번째는 로마 지하철의 종점에서도 한참 걸어가야 있는 바오로 사도의 처형터. Tre Fontane. 세 개의 분수라는 뜻으로, 바오로 사도를 참수할 때 머리가 세 번 바닥에 통통통 튀었는데 그 튄 자리에 분수처럼 샘물이 솟았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그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고, 지금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직접 그 역사적인 장소에 가본다. 직접 보고는, 참수당한 머리가 저기까지 통통통, 갈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그 간격이 거의 동일한 것이 사실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거리가 훨씬 멀고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더 가까운 게 물리적 법칙이 아닌가 했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적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보다도 이 먼 거리를 오면서, 로마로부터 정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수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로마시민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생각을 꼬리를 물고 하다 보니, 성인의 무덤, 샘물 등과 같은 모든 이야기가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는 아닐지, 그게 사실이라도 이 무덤이 진짜 그 무덤일까. 아무리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나중에 기록에 맞춰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런다 해서 그 장소가 의미 없는 건 아니겠지만.


다음은 바오로 성당을 가본다. 이는 Tre Fontane에 비해서는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는데, 이 성당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이 성당은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 어마어마한 성당에 일하는 신부, 수사님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베네딕토 수도회의 시작인 몬테카시노에도 6명의 수사밖에 없다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다시금 상기해본다.

각설. 그리스도교의 이론적인 정체성은 거진 바오로에 의해 정립되었다. 어딜 가도 바오로를 볼 수 있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 앞에도 한 동상은 베드로, 한 동상은 바오로다. 분명 바티칸 투어를 하면서 들었을텐데 한번 듣고 흘려보냈던 것 같다. 이제는 더 까먹지 않겠지.


또, 어느 수도회든 모든 수도회의 시작은 베네딕토회. 트라피스트회일지라도, 베네딕토에서 파생되어 나왔기에 베네딕토 성인의 동상이 있다.


여기서 알레고리를 떠올려본다. 베드로는 항상 열쇠를 쥐고 있고, 바오로는 칼과 책을 들고 있으며, 베네딕토 성인 동상에는 지팡이, 책, 까마귀, 잔이 있다. 이는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 규칙을 만들었기에 이를 상징하기 위해 책, 한번은 베네딕토를 미워하는 어떤 이가 빵에 독을 타서 줬는데 이를 까마귀가 물어가서 버렸고, 또 한번은 포도주에 독을 탔는데, 이 잔이 깨져버렸다고.


복된 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하나의 일정,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일정. 추기경 서임식. 최초에 신부님이 이 여행을 계획한 것도 로마에 서임식을 가자고 한 것이었다. 역시나 사람은 인산인해. 그중에서도 태극기가 보이고, 곳곳에 한복을 입은 분들이 보인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열정적인 모습이랄까.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제시간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실 그 이유는 이태리 경찰의 지독히도 비효율적인 검문 방식 때문. 화가 났다. 옆에 계신 수녀님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로마에는 많은 믿음이 있어요.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믿음을 다 내려놓고 가거든요.”


이 말인즉슨, 줄 서다가 지쳐서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신부님과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동안의 복된 순례일정으로 믿음이 충만해졌는데, 그정도로도 이런 상황을 견딜 믿음이 부족하지 않냐며 웃어 넘겼다. 그렇게 늦긴 했지만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재밌는 건 제대 뒤편에 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몇몇 한국 사람들은 평화방송으로 생중계되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외국인들도 옆에서 슬쩍슬쩍 훔쳐서 본다. 한 시간이 채 지났을까. 모든 행사가 종료됐다. 신부님은 종료된 행사에 대해 이야기해주는데, 사실은 이게 교황, 추기경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인데 그 회의 안건이 신임 추기경 임명이고, 다른 하나는 밀라노에서 추천한 시복식을 언제 할지에 대한 거였다고. 입장부터 행사의 끝까지, 20년간 수도생활하면서 이런 행사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물론 나쁜 의미로. 물론 추기경이 되신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모든 행사가 종료되고, 신임 추기경님과 만남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안내를 받았다. 물론 이것도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어떤 건물로 올라갔는데, 영화 다빈치코드에서 나오는 그런 장소인 듯하다. 추기경님이 기다리고 계신 장소는 교황님이 주말마다 오전에 나와서 인사하는 창문이 있는 큰 방이다. 각국 추기경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단연코 유 추기경님 줄이 제일 길다. 역시 의지의 한국인이다. 멀리서도 많이들 오셨다. 다들 사진을 수차례 찍는다. 마침내 내 차례도 돌아왔다. 추기경님께 어떻게 말을 하지 하면서 몇 분 정도 머리를 굴려봤다. 이미 수백, 수천 명과 인사를 하셨을 테니 길게 말할 필요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축하드립니다. 추기경님. 10여년 전에 추기경님께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했다. 나보다 더 인연이 깊은 분들이 훨씬 많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자 기뻤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위치에서 추기경님이 어떤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남북 관계 해결의 물꼬, 기후변화에 대한 가톨릭의 전향적인 노력 등. 이것이 결국 ‘무너져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킬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이건 개인적인 소망인데, 물론 추기경님이 더 잘 알고 계실 거다. 한편으론, 이런 희망에 찬 생각보다도 큰 변화가 있지는 못할 거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더욱 크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현실은 그랬으니. 그래도 꿈꾸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할 건 없지 않은가.


이렇게 가톨릭의 뿌리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쇠락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그런 한편 수도 생활 등 전통을 지키는 여러 성직자와 더불어 세계 각국에서 이를 찾는 많은 이들을 보며 밝은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 유럽의 장래가 어둡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톨릭을 비롯한 현대 사상의 뿌리가 있는 이곳이 미래가 있는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일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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