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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Sep 19. 2022

장돌뱅이의 독일투어

NRW: Bonn, Düsseldorf.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기준으로 국경을 삼았던 로마 제국. 마찬가지로 라인강이 흐르는 Bonn의 역사도 로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사실 별다른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불과 20세기 전까지.


서독 임시수도 선정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미 대도시이자 기반이 갖춰져 있었던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이 수도의 후보로 꼽혔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유력한 후보는 프랑크푸르트. 이미 경제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었고, 서독의 중심부에 자리한 지리적인 장점 등, 거의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당시 수상이었던 콘라트 아데나워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은 프랑크푸르트가 서독의 공식 수도로 지정될 경우, 통일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낮아질 것이며, 이미 대도시이자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그곳이 베를린이 아닌 통일된 독일의 수도가 되는 것을 우려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더 발생해도 상대적으로 소도시였던 본을 수도로 지정했다고 한다. 냉전의 한복판, 분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도 통일을 고려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의견이 그 당시 주류 의견이었기에 독일과 우리나라의 통일은 시작부터 달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패전의 멍에를 쓰고 분단된 독일, 때때로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라고 비교하긴 하지만,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는 걸 인식할 수 있다.


독일의 재통일 이후 열띤 정치적 공방 끝에 수도는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정부 기관도 많다. 그 당시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기는 걸 반대했던 논리 중 하나가 본과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과의 근접성을 꼽았다고.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 현재 독일에서 제일 많은 UN 기관이 위치한 곳이 되기도 했다.

UNFCCC,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일하는 친구 덕에 그곳을 방문해본다. 이곳 UN Bonn Campus에는 UNFCCC를 비롯해 UNESCO, 사막화방지협약 등이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게 원래 독일 정부 건물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점.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빈 부지에 새로 건물을 올리기도 했다. 건물 최상층에선 라인강은 물론이고 저 멀리 쾰른 시내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쾰른이 이곳과 멀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이 주변은 UN은 물론이고 독일 최대 택배회사인 DHL, 언론회사 DW, T Mobile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UNFCCC는 1992년 리우 기후 회의 이후, 1994년 설립되었으며,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이라고 불리는 국제기후회의를 담당하는 곳으로, 당사국들의 협약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고. 즉, 위기의 지구를 살리는 일의 최전선에 있다고나 할까. 한편, 이런 회의를 주관하여 파리 협약 등 어떤 합의를 끌어낸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쳐 줄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꼽고 싶다.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내게 ‘그럼 너는 뭘 할 수 있냐’고 할 텐데, 사실이다. 욕하는 건 쉽지만 대안을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첫 COP이 1995년 열렸고, 그 의장이 메르켈 전 총리, 당시 환경부 장관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한편, 웃긴 건 이곳에 변변찮은 식당 하나가 없다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기를, 예전에 정부 기관이 있었던 곳인데 앞에 식당 및 편의시설이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건 이 도시가 급조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혹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인지, 혹은 애초에 임시수도라는 생각에 투자하지 않았던 것인지. 여러 생각은 들지만,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한 대안 혹은 틈새시장으로 매일 푸드트럭이 온다. 어쩌면 이것 자체가 평일에 점심밖에 장사가 되지 않는 셈인데 그게 수지타산에 맞지 않기 때문에 혹여나 식당이 생기더라도 망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뭐가 됐든 정부 기관이 있었던 곳에 식당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굉장히 생경한 일이다.


구시가지로부터 3km 정도 떨어진 이곳에 UN  각종 고층 빌딩이 있고,  주변에 마찬가지로 박물관 단지가 모여있다.  박물관에는 독일 현대 역사를 비롯해 예술, 과학기술 박물관이 있는데,  중에 역사박물관을 가봤다. 1945 이후의 독일에 대한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데, 공짜다. 전후 독일의 모습, 분단된 독일의 모습이 사실은 제일  비중으로 다뤄져 있다. 이곳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실망하는 일이 많아지곤 했는데,  때문에 내가  나라에 끌렸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걸어  행보가 우리로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나 할까. 난민, 유로존의 위기를 비롯해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어려운 위치에  있는 그들이  위기를 타개할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기도 한다.


구시가지로 넘어간다. 2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진 대학이 있긴 하나, 그리 주목할 만한 것은 되지 못하고, 이 도시는 뭐니 뭐니 해도 베토벤의 고향이기도 하다. 본은 베토벤과 UN을 빼놓고는 설명할 게 없다고나 할까.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베토벤은 그의 삶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냈기에, 이곳은 고향이자 음악가로서의 역량을 성장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모차르트, 리스트 생가도 가봤지만, 역시 생가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 그다지 볼만한 건 없다는 사실. 그래도 위대한 음악가가 탄생한 곳인데 그 정도의 가치는 있지 않겠는가. 음악 전공자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그의 소나타에 투자한 시간만을 생각해보더라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후 시내를 여러 차례 돌고 돌아도 느끼는 건 별것 없다. 이는 독일의 도시가 이제 내겐 별다른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이 도시가 특별한 게 없어서일 수도 있다. 라인강에서 한참 멍을 때려본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30분 남짓 갔을까. 쾰른 대성당이 창 너머로 보인다. 쾰른은 유난히도 시내와 역이 가까운 도시 중의 하나이기에. 다리를 지나며 보이는 라인강의 풍경을 보니 연말에 잠시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한 시간쯤 더 갔을까. 뒤셀도르프에 도착한다. 대도시로 세련됐고, 쇼핑할 것들이 많다. 거리에는 세련된 사람들이 한껏 멋을 부린 채 걸어 다닌다. 관광객보다도 쇼핑하러 온 유럽인들이 더 많다고나 할까. 함께 한 친구와 BBQ에 간다. 한국의 맛. 이곳에서 먹는 치킨이라.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내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역시나 엄청나게 흥미로운 건 없다. 물론 도시가 세련되고 매력이 있는 건 맞지만, 새로운 자극은 없다고나 할까. 이젠 독일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러려나, 혹은 이 도시가 그런 것일까. 알 수 없다. 독일이 아니라 웬만한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녀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일까.

끝으로, 1년 남짓 바이에른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다가 그곳을 벗어나니, 그동안의 독일과는 꽤 다른 독일이 있음을 실감한다. 바이에른에서 외국인으로서의 느끼는 시선과는 사뭇 다른 이곳. 이질감 혹은 차별이 훨씬 덜한 시선으로부터 편안함을 느낀다고나 할까. 물론, 그곳에서의 시간이 색다른 경험이었던 건 분명하다. 여러모로 바이에른과 이외의 독일은 참 다른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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