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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29. 2022

독일 남부의 자유,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

그 역사와 앞으로의 미래, 지향점

인구 23만의 프라이부르크 우리로 따지면 소도시지만, 이곳에서는 제법 큰 도시. 서울 사는 사람이 서울의 근원, 역사 등에 관심이 적고, 박물관에 거의 가지 않는 것처럼 나도 이곳의 역사에 심드렁했다. 이곳에 도착한 지 3개월이 지난 이제야 좀 생각해본다.


먼저 Freiburg가 속한 Baden-Württemberg 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독일은 통일된 지가 200년도 채 되지 않는지라, 주마다 역사가 각양각색인데, Baden주와 Württemberg 두 주가 2차 세계 대전 패망 후에 행정구역으로 합쳐졌으니 지금은 사실 한 주라고는 하지만, 또 다른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Freiburg를 비롯해 Mannheim, Karlsruhe, Heidelberg는 Baden이라면 Stuttgart는 Württemberg인데 이를 또 Württemberg보다 Schwaben (Swabia)이라고들 많이 한다. 지금의 주 이름보다도 ‘나는 Schwäbisch (영어로 Swabian) 출신이야.’라고 말하는 게 더 보편적이니까. 근원을 따져보니, 이곳이 또 한 나라였단 사실을 알 수 있다. ‘나 바이에른 출신이야~’ 보다는 지역색이 덜한 편이지만, 이곳도 지역색이 없다고 보기엔 어렵다. Badisch도 마찬가지.


다시 말하자면, 바이에른인만 독일 내 다른 나라라고 떵떵거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그 색깔이 분명 덜 하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다. 사투리도 심한 것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처럼 색깔이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긴 그 남부지방의 소득수준이 굉장히 높은 편이지만.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를 경계로, 이곳은 스위스와 프랑스를 경계로 삼고 있으니, 뭐 경치도 좋은 편이고,, 좋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서론이 길었다. 그럼 프라이부르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Freiburg는 Baden-Württemberg 주에서의 Stuttgart, Mannheim, Karlsruhe에 이어 4번째로 큰 도시로, 카이사르가 고전한 Schwarzwald, 검은숲을 경계로 삼는다. 여담으로, 이 검은숲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에서 동쪽으로 가는 기찻길이 편치 않다. 또 이에 더해 생각해보면, 동서로 길게 늘어진 알프스를 고려해봤을 때, 모든 길이 남북으로 잘 되어 있고, 동서로의 교통로는 필연적으로 잘 이어질 수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각설. 이곳은 라인강 상류의 중심도시였으며, 이곳 출신 공작이 이 도시의 시조새였는데, 이름에 있는 Frei, ‘자유’는 아주 대단한 개념이었다고.. 100여년이 지나 한 백작이 시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려고 하자 시민들이 백작의 성을 부수고 쫓아내 자유를 쟁취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그 이후, Guild, 조합장의 지도자가 다스렸다고 하는데, ‘자발적으로’ 합스부르크의 보호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나폴레옹이 온유럽을 휩쓸기 전까지 지속되었다고.


합스부르크의 영향권인만큼 도시도 신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톨릭을 유지하게 됐고, 이것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성당은 1200년부터 건축을 시작해 완성되기까지 300년이 걸렸는데, 한때 유럽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이런 배경 아래, 이곳의 주류 중에 하나가, 수백년 간 이어진 자유로운 사상의 기반 덕에 지금의 친환경적인 마인드셋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뭐 꼭 틀린 이야기는 아닐 테다. 실제로 1970년대 탈핵 운동의 시발점이자, 1992년까지 프랑스의 군사 기지로 쓰였던 도시 내 Vauban 지역은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실제로 실천에 옮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최초로 사용하는 에너지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드는 에너지 플러스 빌딩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가보았다. 얼만큼이나 친환경적인지 궁금해서. 차 없는 곳이라고 했지만, 사실 주택 사이사이에 들어가 보면 차가 없지 않다.

그래. 물론, 친환경적인 건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곳은 없는 게 맞다. 그곳 사람들도 차를 끈다.


또 하나의 놀랄만한 사실이라면, 진보적인 사상이 깃든 이곳이 나치 프로패간다의 경연을 펼쳤던 곳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적지 않은 전쟁범죄가 이뤄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역사는 쏙 빼놓고 이야기하는 이중성이 다소 무섭다. 한 전시는 모든 인종차별의 근원이 신대륙발견과 노예무역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신대륙 발견의 기반이 된 선박 제조에 필요한 나무가 이곳 검은숲으로부터 보급이 되었다고 한다. 그 뿌리가 이어져 나치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바이에른보다는 훨씬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인 이곳이지만, 이곳 또한, 그런 어두운 역사가 있다는 점과 Green City의 허와 실을 직접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건 없다.


물론, 내 기숙사만 해도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유명한 새로운 시청 건물, 역 앞의 상업적인 건물 등 정말 광범위한 구역에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정부, 지자체 등 정책적인 부분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가을 하게끔 하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이곳도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는 게 그 어느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 그렇게 다를 수 있겠냐마는.


공부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에 접목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걸 실천한 것만으로도 본받을만한 일이지만, 이젠 조그만 실천으로 위안을 삼는 게 아니라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곳도 명확한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 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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