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지리의 관점에서
덴마크를 다녀오고 나서 갑자기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이 생겼다.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독일 역사를 차근차근 들여보기로 했다. 그동안 알던 1871년, 보불전쟁 이후, 통일된 독일의 역사가 아니라 그 근원에 대해. 그동안 통일된 독일 이후의 역사만 관심을 가진 탓해 다소 편협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20세기 이후 독일은 세계에서 제일 역동적인 역사를 가진 건 사실이지만.
어쩌면 독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Swabian이야.’ 혹은 ‘Fraconian’ 등 듣도 보도 못한 지명 이야기를 해서 그런 게 호기심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지금 16개 주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물론, 유럽의 역사가 로마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니까 그 근원을 로마로부터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실질적인 뿌리를 찾아본다. 이게 독일의 정체성과 더 일맥상통하다. 이는 샤를마뉴, 카롤루스, 카를 대제(모두 동일인물)로도 유명한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
아래는 샤를마뉴 당시 프랑크 왕국의 영토. 생애 내내 전쟁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중 주목할만한 사건으로, 롬바르디아 왕국(지금의 밀라노 주변)을 굴복시킨 끝에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황제의 명칭을 얻게 되고, ‘유럽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그의 사후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쪼개진 세 제국. 서쪽이 프랑스, 가운데가 이탈리아, 동쪽이 독일의 뿌리가 됐다. 이탈리아는 이 정체성보다는 고대 로마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곤 하지만.
각설. 동프랑크 왕국(독일 지역)의 카롤링거 왕조가 쇠락하자 기존 부족들이 슬금슬금 다시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그 대표적인 부족, Stem Duchy가 작센(색슨), 바이에른, 프랑켄(프랑코니아), 로트링겐(로렌), 슈바벤이다.
이 주요 다섯 부족 중 결과론적으로는 바이에른만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작센이라는 이름도 독일의 행정구역에 존재하지만, 전통적인 그 위치, 그 명맥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또, 지금의 튀링엔은 작센에 의해 이미 유명무실해졌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생긴 개념이기도 하다.
한편, 919년, 샤를마뉴에 의해 지독히 학살당했던 작센족의 왕이 탄생하고, 962년 오토 1세는 다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여러 귀족이 돌아가면서 이어갔는데, 이때를 Kingdom of Germany, 독일왕국이라고 부른다.
이런 배경이 지금 독일의 연방제, 그 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그렇게 지방분권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쓰는 자신의 뿌리는 왜 행정구역 명칭과는 다른지, 그 유래에 대해 알아봤는데, 유난히도 바이에른이 지역색이 강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만이 그 뿌리를 고대부터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결론 내려본다. 이외에도 언급한 다섯 부족 말고도 16개 행정구역 하나하나에는 다른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그 이후의 나온 부족, 가문의 이름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의문점. 베를린이 다른 행정구역인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유독 함부르크와 브레멘만 다른 행정구역일까. 모두 북해와 연결된 항구도시인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중세 한자 동맹의 중심도시였는데,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브레멘은 하노버를 주도로 하는 니더작센에 통합될 뻔했으나, 당시 브레멘 시장이 미군을 찾아가 브레멘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독립적인 주라고 강변하여 별도의 주로 남게 됐다고. 함부르크는 워낙 규모도 크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다고.
이렇게 독일의 뿌리를 간략하게 알아봤다. 공부하다 보니, 그저 프로이센 이후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고의 틀이 깨졌다. 그들의 지방분권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고.
다음은 지리.
역사와 지리 둘 중에 뭐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역사가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그 두 개가 서로 떼놓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인가. 얼마 전, 한 친구는 역사를 알아서 뭐 하냐며 지도로 어디에 있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니, 한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로마의 역사보다 어느 도시가 어떤 곳에 있는 게 중요하냐며 그런 거야 구글맵이 알려주지 않냐고 항변한다. 나로선 두 개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역사를 보고 또 지리를 보니 연결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독일의 지도를 펼쳐놓고 살펴본다. 각 지역의 경계는 산과 강이 되고, 산과 강은 서로를 가르지 않고 이를 따라간다. 이는 우리나라 산수, 백두대간, 1대간, 13정맥,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에 적용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과 다르지 않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은 없고, 강을 품지 않는 산이 없으니 산과 강은 하나이다.”
자연의 이치는 어디 가나 똑같고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해서 그런 방식으로 국경이 있고, 국가 내부에서도 다른 지방이 있고 이에 따른 다른 문화가 있는 셈이다.
여기서 독일, 혹은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이라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도에 통일된 국가의 역사가 긴 반면, 유럽 대륙은 기본적으로 훨씬 크고 더 많은 국가, 인종이 짬뽕된 셈이다. 그렇게 봤을 때 중국은 한족 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의 뿌리가 많지 않은가. 물론 중국 또한 오랜 중앙집권 국가 형태가 있기도 했지만. 이게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지, 이것도 지리와 관련이 있는지 고민이 된다. 중국의 사례를 고민할 만큼 그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본다. 단순히 한국과 독일, 혹은 유럽을 비교했을 때는 지리적인 차이점이 문화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어느 순간 상호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부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개념이 되는 듯하다.
일례로, Jura 산맥.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이기도 한데, 이것이 Schwaebisch와 Frankische Alb로 이어진다. Alb가 Jura의 독일어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또 Erzegebirge, Ore 산맥으로 이어진다. Ore 산맥은 독일과 체코의 경계가 된다.
오랜만에 큰 틀에서 역사와 지리, 사회학적인 측면을 살펴봤다. 이를 공부하고 나니, 조금은 이 나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애정이 생긴다. 재밌는 일이다. 막상 어제 독일인과 이런 이야기를 하니, 본인들도 잘 몰랐다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한 번도 그 뿌리를 유심히 고민해 본 적은 없다고. 또 여유가 되고, 내공이 생기면 독일을 넘어 유럽을 더 큰 틀에서 고민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게 예전에 작가가 먼나라 이웃나라를 쓰게 된 동기부여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