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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unhofer ISE의 역사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시각

by 송다니엘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연구소로 한다면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두 기관을 꼽을 수 있는데 막스플랑크는 기초과학을 연구한다면 프라운호퍼는 반대로 응용과학, 조금 더 우리 실생활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한 교수 말처럼 노벨상을 타고 싶으면 막스플랑크를 가야 하고, 공학을 하고 싶으면 프라운호퍼에 가면 된다고 말이 찰떡인 비유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초.


반도체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William Shockley의 4명의 수제자 중 하나인 Adolf Goetzberger가 미국에서 독일로 건너와 Fraunhofer IAF (Solid State)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태양광 에너지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별도로 만들 것을 주장했는데, 그 당시 이에 대해 찬성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워낙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지라 그의 영향력은 연구소 내에서 굉장히 컸었고, 그의 주장대로 태양광 연구소는 1981년, 20명의 조그만 그룹이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다. 이게 Fraunhofer ISE의 시작이다.


에너지전환이라는 컨셉을 이미 40년 전부터 확고하게 갖고 있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차례 오일쇼크 파동 등 기존의 에너지를 대체하는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은 주요한 사건들로 더욱 커지게 되었고 40년이 지난 지금 ISE는 프라운호퍼 내에서도 두 번째로 큰 규모인 1400명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는 태양광은 물론이고 에너지전환을 연구하는 곳 중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기관 중 하나이다.


한편, 40년 전 지금의 미래를 그려 이런 성과를 낸 건 고무적이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태양광 에너지를 강의하는 교수 말처럼 Solar Revolution이 시작될 거라고는 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그 정도의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고, 러시아 전쟁 이후 지정학적인 위기로 인한 세계가 그 전보다 훨씬 불확실해진 데다가 에너지 자체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보니 태양광과 풍력을 대용량으로 도입하고, 국가간 전력망을 더욱 확대한다는 기본적인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니까.




위의 국제 정치, 에너지 안보와 같은 일은 정치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내가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먼 일이다.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랜 기간의 고민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개인으로 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건 기후변화를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경영, 경제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공학적인 접근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기후변화에 엔지니어링의 측면으로 대응하는 연구기관 중 제일 큰 곳에 인턴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얻게 된 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애초에 이 학교에 오고자 했던 이유 중 제일 큰 점이 이것이었으니 나의 작은 목표는 이룬 셈이다. 이곳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연구하며 공헌할 수 있을지는 일단 일을 시작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바쁘고 여유가 없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뜻깊고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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