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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Apr 05. 2023

또다른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를 처음 간 건 10년 전 여름. 이미 2주간의 여행으로 어떤 성당에 가든, 어떤 광장을 보든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더욱이나 무더운 8월의 날씨는 여행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였달까. 그렇게 처음으로 도착한 로마는 바티칸을 제외하곤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다분히 관광지라는 느낌만을 받으며,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광장 등에서 시간을 보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로부터 2년쯤 지났을까. 졸업을 앞둔 마지막 훈련인 순항훈련 코스가 당해에는 세계일주, 즉 수에즈 운하를 거쳐 온 유럽 대륙을 간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가기 전에 유럽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집에 고이 보관된 로마인 이야기를 펼쳤다. 그리고 그로부터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15권의 책을 정말 빨리 읽었다. 그 찬란했던 역사의 흥망성쇠를 알고 나니 그제야 유럽에 대한 눈이 떠진 듯했다. 유럽의 모든 시작이 로마였음을 알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2015년. 사관학교 졸업의 마지막 관문, 순항훈련을 떠나게 됐다. 진해에서 출발하여 50일이 지날 무렵, 로마의 항구, 치비타베키아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로마의 역사를 알게 되어서였을까. 다시 간 로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매일 포로 로마노를 보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떠나는 마지막 날은 실질적인 외출 시간이 두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음에도 다시 로마 시내를 찾았다. 특히 돌아가는 순간에는 큰 감동과 미련이 남았는데 그 이유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2017년이었을까. 우연히 서점에서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찾았다. 독일 사람 괴테도 이탈리아를 그렇게 좋아했구나 싶어 고민하지 않고 그 책을 덜컥 샀다. 그리고 그 책은 아예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었다.


사실 2012년부터 입던 해군 제복은 항상 내게 고민을 안겨주었다. 최초엔 이 옷이 애초에 내게 맞는 옷 같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 옷에 내가 맞게 되는 듯했고, 나는 그렇게 조직에 잘 머무는 것 같으면서도 그로부터 10년, 20년, 30년 넘게 이 일을 하는 데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인정받고 괜찮은 삶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모를 갈증이 있었다.




200년 전, 괴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정치적인 성공을 구가하다가 도망치듯 시작한 이탈리아로의 여행. 그는 이를 이렇게 서술한다.


“북방에 있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지방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로마)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1786년 11월 1일 로마에서.




그의 여행은 단순히 여행에 그치지 않았다. 철저히 신분을 속이고 그는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걸 넘어 스스로 대가의 경지에 이르는 토대를 갖췄다. 이 이탈리아 여행 덕분에 그가 독일 문학의 대부가 될 수 있었다는 건 꽤 많은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시 괴테만큼의 성공을 이룬 적도, 능력도 없겠지만 실존적인 고민을 하던 나도 그런 결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2021년.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다녀간 지 6년이 지난 시점. 그 사이 사관학교 졸업은 물론이고 장교 생활 5년 끝에 9년간의 해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독일로 오게 됐다.


내겐 그 책이 새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서게 만든 시초이자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온 나침반과 같았다. 그랬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등 어느 곳을 가도 여행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를 가기 전까지.


7년 만에 돌아간 이탈리아. 열흘 간 머물렀다. 다시 찾은 로마는 내가 기억한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러면서도 더욱더 많은 곳을 가고 싶었는데 이는 어쩌면 내 정체성을 그곳에서 찾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탈리아를 찾았다. 이번엔 뮌헨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베로나, 파도바를 거쳐 로마로 갔는데, 우연히 이탈리아 기행을 다시금 찾아보니 그 경로가 괴테가 이동했던 경로와 거의 유사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가 방문했던 곳이 내가 갔던 곳과 일치한다는 걸 꽤 나중에야 깨달은 셈이다.


또 시간이 꽤 지났다. 서점에 우연히 독일어 원문, 이탈리아 기행 책이 꽂혀있는 걸 본다. 괴테가 갔던 장소를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과 덧붙여 책을 만들었다. 가격이 꽤 나가는데도 구매했다. 그만큼 내게 의미가 있는 책이니까.



그렇게 또 이탈리아를 간다. 이번엔 가보지 못한 시칠리아로. 나의 이탈리아에 대한 갈증은 언제쯤 해소될까. 로마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 이젠 가보지 못한 이탈리아의 남부를 비롯한, 시칠리아까지 이어진다. 결국은 꼭 어딜 가는 것보다 내가 찾는 무언갈 해소해야만 끝나는 거일 테다. 과연 그걸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란 우리들 마음에 아무런 심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칠리아야말로 모든 것을 푸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Italien ohne Sizilien macht gar kein Bild in der Seele: hier ist erst der Schlüssel zu allem.”


1787년 4월 13일 Paler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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