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정말 오랜만에 종이책을 펼쳤다.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지난 두달간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시작한 일에서도, 듣는 수업에서도. 아버지는 내가 그럴 거라 짐작했는지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긴 했다만, 그것도 잠시. 나 자신의 부하를 줄이려고 해도 줄어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내게 더 큰 압박은 내가 계속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하고 6주 만에 1주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쯤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계획대로 실행했다. 오랫동안 가보겠다고 생각한 곳이었고, 꼭 한 번 가겠다는 약속을 지켰음에 마음의 짐을 던 것 같았고, 여행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았다. 다만 그 순간마저도 꼭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이동하는 순간에도 일하든지 공부하든지 그랬다. 여행할 땐 그냥 마음 편히 종이책을 읽을 여유 따위가 없어진 셈이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도 일을 하고 주말이 됐다. 아직도 해야 할 무언가는 밀려있지만,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쓸데없이 보내다가 하루는 날을 잡고 괴테의 책을 펼쳤다.
6년 전. 아직 새로운 삶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언가 꿈을 품었었다. 이는 괴테가 성공적인 현실 정치에서의 삶을 놓고 도망치듯 이탈리아로 떠나오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서 감명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엔 무엇을 해야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입은 군복은 벗고 그래도 무언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된 책이었다.
이 책을 수없이 인용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은 행방불명이 되어있던지라, 다시 읽을 기회는 없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독일에서 독일어 원본을 사들였지만 역시나 읽는 속도가 너무나도 느려 쉽지 않았고,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부모님을 통해 받았다.
다시금 읽는데 처음엔 재밌다가도, 지식인의 허영심을 느끼며 마치 예술은 어쩌면 모두 허세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한편 어머니는 사실 인간이 허세를 빼면 남는 것도 얼마 없다고 이야기한다.
뭐 허세든 뭐가 됐든 조금 더 읽다 보니 예전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학을 준비할 당시, 그 어떤 선례도 없었고 경험도 일천한 이유로 나의 글은 굉장히 감성적이었다. 예를 들면, 자기소개서에 괴테나 처칠의 글 등을 인용하곤 했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너무나도 거창하다며 이를 지적했는데 그땐 ‘왜? 멋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과정 끝에 결국은 다소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글이 되었고,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점점 그런 글과는 멀어지는 글을 쓰게 되었다. 그건 글뿐만 아니라 내 생각 자체가 완전히 감수성과는 멀어진 이성에 가까워졌고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 친구는 내게 이공계 공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어쩌면 그를 만났던 그때 당시엔 그 말이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인문계 공부를 하는 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될 듯하다.
서론이 길었다. 오랜만에 문학을 읽으니 다시금 감수성 세포가 살아나는 듯했다. 자기소개서에도 위인들의 말을 인용하던 그 감수성이. 그 감수성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취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 감수성이 다시 나를 살리는 듯했다.
저번에 아버지는 내게 조언했는데 그 요지는 내가 평생 연구직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그땐 이해를 못 하고 본인이 이룬 분야에 있어 내 역량이 부족하여 무시한다고 생각하여 화가 났지만 몇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나의 기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이곳에 오면서, 모르는 지식을 흡수하기 바빠 이를 아예 내려놓고 살았는데 그것 자체가 죽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글 쓰는 게 뜸해진 것도 비슷한 이유였는데 다시금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한편, 글을 읽다 보니 잠시 로마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러곤 아주 잠시, 그 기회를 놓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괴테처럼, 내가 매번 갈망하는 이탈리아에서 꽤 장기간 머무르면서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울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어서.
하지만 그런 사치를 부리기엔 내가 서른일곱의 괴테만큼 현실 세계에서 이룬 것도 없고 깊이가 부족하기에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걸 깨달았다. 추후에 내게 운이 좋아 안식년 따위가 주어질 기회가 있다면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학적 감수성이 살아난 건 좋지만 이게 너무 발전하여 내 중심을 흐트러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괴테와 같은 대문호가 되는 건 아니니까. 이 모든 건 적절한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기회로 삼기로 한다.
아래는 몇 가지 글에서 공감이 가서 직접 적어 보았다.
11월 1일 로마.
북방에 있으면 누구든 몸과 마음이 그곳에 사로잡혀서 이런 남쪽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겪었다. 따라서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세계의 중심지를 찾게 된 것이리라. 사실 난 지난 몇 년동안은 마치 병든 것 같았다. 그래서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을 찾아와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뿐이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그때는 정말 라틴어로 쓰인 책 한 권, 이탈리아의 풍경화 한 점조차도 바라볼 수 없었다. 이 나라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무르익었다. 그런데 이제 막 그 욕구가 채워지니까 친구들과 조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티롤 산맥을 마치 날아서 넘어온 것 같다. (중략) 피렌체에서는 겨우 세 시간밖에 머물지 않아 거리는 거의 구경도 하지 못했다. 로마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고 날이 갈수록 커져서 자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생 이어질 듯한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부분적으로 속속들이 알고 있던 것들은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거기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2월 17일.
나는 이해가 빠른 편이라 예술가들이 내어주는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뭔가를 빨리 이해한다는 것은 정신의 특성이지만, 뭔가를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생에 걸친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마추어는 자신의 실력이 미약하다 해도 낙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종이 위에 그리는 선은 똑바르게 그려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감각적인 사물의 표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상을 좀 더 정확하게 자세하게 살펴볼수록 더 빠르게 보편성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예술가와 비교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자연은 자기 자식들을 돌보아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 해도 잘난 존재에 대해 자기 존재를 방해받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작은 남자도 남자인 것이다.”
2월 20일 로마. 재의 수요일
바다에서 한밤에 폭풍우를 만나 집을 향해 필사적으로 노 저어 가는 뱃사공의 이야기가 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 곁에 꼭 붙어있던 그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저쪽에서 위로 떠올랐다가 아래로 가라앉는 저 이상한 불빛는 뭐에요?”
아버지는 다음날 설명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날이 밝자 그것은 등대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나운 파도 때문에 위아래로 흔들리는 눈에는 그 등대불이 위로 아래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 또한 세차게 요동하는 바다에서 항구로 노를 젓고 있다. 비록 등대 불빛이 시시때때로 위치를 바꾸는 듯이 보일지라도 그 불빛을 향해 가면 마침내 해안에 다다를 것이다.
길을 떠날 때에는 언제나 지난 모든 이별과 앞으로 다가올 이별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를 한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게 훌륭한 것에 잘 정돈된 박물관에조차 등을 돌리고 떠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