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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l 24. 2023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가톨릭에서 씨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는 핵심 교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을 가진 이래, 10여 년간 거의 매주 성당을 다니며 꽤 많이 들어왔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당시만 해도 그보다 다른 교리, 이야기가 더 와닿았기 때문에 그저 믿음 혹은 신앙을 강조하는 하나의 교리겠더니만 했을 뿐 그다지 마음에 새기지는 않았다.


전날 과음 후 다소 잠이 덜 깬 채로 미사에 참석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길었다. 독일 생활 2년 차지만 지금까지 귀가 뚫리지 않은 관계로 하는 이야기의 8할 정도는 그냥 지나간다. 2할 내지는 3할 정도의 알아듣는 단어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하고 유추할 뿐인데, 오늘 신부님은 길고 긴 강론의 마지막을 세 가지 단어로 요약했다. Glauben, Mutig, Geduldig. 첫 두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신앙과 용기. 세 번째 단어는 무엇일까. 까먹기 싫어서 혼자 두세 번 되뇌었다.


미사가 끝났다. 나는 핸드폰에서 Geduldig를 찾아봤다. 영어로 Patience, 즉 인내다. 많이 들어본 단어고 여러 번 오며 가며 봤을 텐데 게을러서 제대로 익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친구는 내게 곱씹으려고 한 게 아니라 몰라서 되뇌었냐며 핀잔을 주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이어서 ‘그럼 마지막에 신부님이 한 농담도 못 알아들었겠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로선 오늘 복음이 씨뿌리는 사람에 관한 것이었으니 나는 길고 긴 강론 끝에 믿음과 인내를 강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사가 끝날 때 신부는 길고 긴 강론을 들은 형제자매 여러분의 인내심이 훌륭하다고 좋은 주말을 보내라고 했다고 했단다. 많은 이가 대성당의 엄숙한 분위기 속 신부의 유머에 웃음을 지었는데 이를 나는 모른 셈이다. 이젠 독일어로 된 기도문도 같이 응답하고 예전보단 들리는 것도 많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고도 먼 셈이다.


종종 독일인들과 이야기할 때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못 알아먹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을 때, ‘식사하셨어요?’ 혹은 ‘밥 드셨어요?’ 혹은 ‘밥 먹었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똑같은 표현을 매번 쓰는 게 아니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도 비슷한 경우다. 책으로는 당연히 아는 표현인데 출신 지역에 따라 말투나 억양도 다르고 쓰는 표현도 다르다. 예전보다 눈치는 느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전반적인 언어 능력의 향상은 거의 없다.


한 번 어떤 수업에서는 외국인이 독일에서 오래 살아도 ‘인터내셔널 버블’ 속에서만 산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렇게만 살아가면 나도 그 버블에 머무를 것만 같다. 공부가 더 급하다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계속 정말 외국인 중의 외국인으로만 남지 않을까 싶다.


다시 씨뿌리는 사람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 신부의 이야기처럼 용기와 믿음을 갖고 인내심을 가진다면 수십배, 백배의 수확도 이룰 수 있다는 걸 가슴 깊이 새긴다. 그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다짐해본다. 그러면 나도 어느 날 귀가 뚫려 다음 유머를 이해할지도 모를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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