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다니엘 Oct 09. 2023

러시아를 바라보는 거울

세계를 뒤흔든 열흘


소련 공산주의 혁명을 지켜본 미국 언론인의 저서. 저자인 존 리드는 초기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한 에드거 스노와도 유사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사상보다 몇몇 이들에게는 선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스페인 내전,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의 노동자ㆍ사회주의 운동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 이들에겐 아래의 평가가 굉장히 공감될 것이다.


“혁명을 통해 러시아는 선구자이자 국제사회의 지도국, ‘전 세계의 진보적 세력’의 본보기와 영감이 됐다. 74년 만에 러시아는 ‘역사의 전위’에서 예전의 태만하고 후진적인 상태와 같은 느낌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제 러시아 혁명을 다시 돌이켜본다.


강력했던 짜르 왕실의 도덕적 해이, 식량 부족과 같은 국내 문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 등으로 구체제는 붕괴에 이르렀다. 이 권력을 메운 것은 유산 계급. 100여 년 전, 프랑스 혁명으로 권력을 쟁취한 이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부르주아였다는 점과 유사하다. 프랑스가 그 이후, 반혁명(테르미도르) 등으로 끝내 진정한 혁명을 쟁취하지 못한 것과 달리 러시아는 더욱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또 다른 혁명을 일궈냈다.


볼셰비키 혁명 전, 2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러시아의 임시정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는 혁명을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일 수는 있지만, 일반 대중, 즉 노동자와 농민들을 위한 정부가 아니었다. 그런 측면에서 왕정이 붕괴했고, 이를 새로운 세력이 대체했을 뿐 진정한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역사의 진보는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과도기적인 성격을 띤 임시정부로부터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자를 대변했던 볼셰비키는 이러한 점차적인 진보를 믿지 않았다. 레닌과 트로츠키로 대표되는 그들은 투쟁 끝에 또 다른 혁명을 일궈냈다. 기존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서구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볼셰비키 공산당의 급진적인 모습을 전체주의인 나치보다도 두려워하고 경계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본인들이 가진 걸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었으니. 아래 레닌이 했던 연설을 살펴보자.


레닌 왈:

“만약 사회주의가, 모든 사람의 지적 수준이 그것을 용인할 정도로 발전한 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면, 최소한 500년 동안은 사회주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타협이 계속된다면 혁명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부르주아지와 그 어떤 타협도 불가능합니다.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확실하게 분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급진적인 혁명, 유례없는 정치적 실험이 궁극적으로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으며, 지금은 공산당을 세상의 해악이라고 비판, 비난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혁명의 최초 모습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 또한 배타적이고 급진적이었던 볼셰비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스템과 타협하고 대화하려 했던 멘셰비키가 축출된 걸 보면 그 배타성이 결국은 혁명을 이뤄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며 다시금 생각한다. 그 당시 몇몇 지식인들에게 소련의 체제는 본보기가 되는 것이었다. 냉전 체제가 종식된 지 30여 년,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미국이 지금에 들어서는 탄압받았던 인물들의 업적을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과 반대로 홀로 냉전을 이어가고 있는 한반도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적인 문제의 근원이 그로부터 온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제 이 신앙심 깊던 러시아인들에게 자신들을 천국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해 줄 성직자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들은 그 어떤 천국보다도 밝게 빛나는, 그것을 위한 죽음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라를 지상 위에 세우려 하고 있었다.”


한편, 위의 평가처럼 초창기 순수했던 혁명 이후의 볼셰비키 공산당이 변질했던 건 스탈린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스탈린과 같은 괴물이 나온 것이 공산당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2인자였던 트로츠키가 레닌의 후계자가 아니고 스탈린이 된 것도 인사권을 쥐었던 그였기에 가능했을 테다.


어쩌면 혁명의 최대 반역자는 스탈린, 그 자신이었다.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려던 볼셰비키가 소련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사회주의보다도 전체주의에 가까웠으며, 수많은 이를 학살한 그이기도 하니까. 나치만 아니었다면 그의 평가는 사후에 격하 운동이 벌어지기 생전에 치욕을 당했을 수도 있다. 이런 역사의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의 푸틴과 같은 괴물이 나온 것도 그다지 놀라울 만한 일은 아니다. 이는 태생적으로 봉건사회를 타파하지 않은 러시아의 다소 기이한 시스템이 그 근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러시아가 세계질서에서 어떠한 구실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몇 가지 일련의 역사만으로 내가 판단하기엔 내공이 부족하고 알 수도 없다. 그저 어렴풋이 알고 있던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순수했던 혁명 초기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아직도 그들은 짜르 시대의 봉건주의가 남겨진 근대적 국가로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역사 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