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아끼는 이태리인을 보러 먼 길을 떠났다. 레겐스부르크는 나의 첫 보금자리였던 곳에선 30분 남짓 떨어진 곳으로, 독일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여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있으면서 수차례 기차 환승지로, 맥주 축제를 위해서,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었다. 사실 오는 길의 바이에른을 보며 내가 살던 이 바이에른이 이처럼 시골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특히 바덴뷔르템베르크를 분기점으로 삼는 울름을 지난 후엔 산도 하나 없고 평평한 땅이 이어져 참으로 볼거리가 없다. 이래서 바덴뷔르템베르크가 매번 아름답다고 이들이 그랬던 것인가. 한편, 지나가는 길에 저 광활한 부지에 풍력 발전기 하나 없는 걸 보며, 이 모든 것이 프라이부르크에 사는 이들이 보수적인 바이에른은 환경 오염만 한다고 불평하는 부분이었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곳에서 처음 살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게 이제야 보이는 셈이다.
가는 길에 즉흥적으로 Sigmaringen 성과 Ulm, Ingolstadt를 둘러봤다. 처음에 갔던 성은 얼마 전, 독일 전역을 훑어보며 정리해놓은 여행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별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경치를 보다 보니 아름답고, 이름을 보니 낯이 익어 기차에서 그냥 내렸더니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이란 걸 깨달았다. 사실 이곳은 Schwäbisch Alb. Swabian Jura라고도 불리는 산악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가는 길에 굽이굽이 산이 있는데, 성까지 있으니 운치가 있다. 특이할 점이라면, 독일 전역을 통일한 Hohenzollern 가문의 성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베를린에만 있다고 생각한 그들의 흔적이 멀리 떨어진 이곳에도 있는 걸 알아채곤 아직 나의 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이 가문의 절반은 독일 남부, Swabian 지역의 카톨릭이었고, 다른 절반은 지금의 뉘른베르크 주변인 Franken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졌는데, 갈라진 가문의 후자 중의 한 줄기가 나중에 프로이센의 공작이 되어 독일을 통일했다. 내가 지나가다 보게 된 이 성은 남서부에 있으니, Swabian, 카톨릭 귀족의 성이었다.
중세의 많은 컬렉션을 보고 흥미로우면서도 이 돈 내고 굳이 왔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성은 역시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인가. 여기 말고도 그들 가문의 성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어개가 더 있다. 참으로 대단했던 가문이다. 우리로 따지면 이씨 왕조 가문인 셈인데, 그 대단했던 가문도 20세기에 접어들며 관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 소유권을 국가 내지는 지역 정부에 내줬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다 평등하다곤 하지만, 옛 왕가였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귀족들 간의 사교 모임과 교류를 계속 하는지 결혼도 귀족 가문과 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는 듯하다. 2020년대에는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길에 시멘트 공장이 참 많았는데 독일의 시멘트는 다 이곳에서 생산하나 싶을 정도이다. 시멘트 공정 상 많은 물과 석회 성분이 필요한 이유로, 이쪽 지형이 석회 성분이 풍부해서 그런가 싶은 추측을 해봤다. 도나우 강 전역은 독일의 시멘트 공장인가. 다음은 원래 최초 목적지였던 Ulm이다.
이곳은 대성당으로 유명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 성당은 정말 웅장하다. 사이즈로 따지면, 쾰른 성당 다음쯤 되는 듯한데, 알고 보니 높이로 따지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성당이다. 이외엔 그다지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도나우강 주변의 산책로와 시내의 흐르는 시냇물 사이로 만들어진 마을들이 볼 만하다. 마치 스트라스부르의 프티프랑스 같은 느낌이랄까. 도시는 별로 크지 않은데 아기자기한 구시가지와 제법 잘 조성된 공원들이 인상적이었다. 살기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점은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곳이자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을 경계로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가 나눠진다는 점. 이제 이 강을 건너면 바이에른이다.
울름에서 또 한시간 반 기차를 달려 도착한 환승지는 잉골슈타트. 아우디 본사가 있는 곳이다. 이미 여러 다른 이들에게 볼 게 없다고 익히 들어왔지만, 환승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는 바람에 또 슬쩍 구시가지를 보기로 한다. 안타까운 점은 중앙역으로부터 구시가지까지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다는 점이다.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구시가지는 마치 내가 이전에 살던 슈트라우빙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어찌나 도시가 심심한지 왜 이들의 맥주가 맛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감히 생각하기를, 이곳은 맥주 마시는 게 아니고는 할 게 없는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거다. 내가 살던 바이에른이 정말 이런 곳이었나. 왜 바이에른이 독일이 아니라 그냥 바이에른이라고 했는지, 이전엔 바이에른인들의 자부심이라 생각했거늘, 이젠 그게 썩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여정으로 레겐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장장 열두 시간에 걸친 여행이었다. 하루는 한참 나보다 젊은 이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젠 이들과의 대화가 나와는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어졌다.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는가.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이태리인과와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인이 직접 만든 파스타를 먹고 도시의 대성당부터 가본다. 내가 독일에 처음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후 다리를 건너 도나우강을 따라 걷는데 잠시 옛 생각도 해본다.
이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근교의 Walhalla라는 곳으로 간다. 이 고대 그리스 신전과 같은 건축물은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의 위인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이 어마어마한 건축 스케일은 당시 바이에른의 왕 Ludwig 1세가 추진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손자가 훗날 디즈니성으로 유명한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을 만든 것처럼 그 본인도 역시 사치스러움의 끝판왕이었단 걸 새삼 느낀다. 어마어마한 건축물 위로 올라가 풍경을 보면서도 미쳐버린 날씨에 Regensburg는 이름처럼 비의 도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실질적으로 얼마 길지 않은 여행을 했다. 도심 내 로마의 유적들을 보며 이곳이 로마의 군사기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기도 하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곳에서 교수로 머물렀단 사실도 상기해본다.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엔 나폴레옹이 머문 곳이라고 쓰여있기도 했다. 참으로 도시 자체는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이곳의 인프라, 사람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그 친구 말처럼 도시는 아름답지만 사람이 문제라고 한 것처럼. 동유럽, 중동에서의 이민지가 많은 편인데 지리적인 위치 및 산업, 학문의 인프라 등을 고려했을 때 미래가 더 기대되는 도시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또, 프라이부르크에 살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차량 중심으로 구축된 교통 인프라에 별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게 내가 변해버린 거라면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