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아침엔 쌀쌀하긴 했지만 해는 떠있었거늘, 목적지에 도착하니 비가 오락가락 바람까지 아주 독일스러운 날씨였다. 이제 3월 말이 아니던가. 독일의 3월, 아니 4월까지는 날씨가 급변하고 갑작스레 추워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레겐스부르크를 떠나 이곳으로 오는 길은 퍽 아름다웠다. 알고 보니 이곳을 Frankenwald, 프랑켄 숲이라고 부르는 지역이었는데, 이쪽은 풍력 발전기도 꽤 많은 것이 프라이부르크에 사는 이들이 너무 선입견을 품고 본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전체적인 에너지 발전량을 보면 그들의 주장이 꼭 틀린 건 아니지만.
목적지에 도착해 폭풍우를 피할 겸 잠시 들어갔던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때는 복음 말씀이었는데, 따로 뭘 보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인지 거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워낙 익숙한 이야기여서일까 아님 나의 독일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인가. 둘 중 어딘가에 있겠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주일이 오늘이었단 걸 복음을 들으면서 깨닫게 됐다. 아 다음주면 부활이지. 이리 중요한 날을 그냥 지나갈 뻔했다는 생각에 잠시 죄책감도 느껴본다.
신자들은 모두 성지가지(聖枝)를 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건 없었는데 늦게 와서 그랬나 보다. 미사를 마치기 전, 신부님은 공지사항으로 다음주 부활 성삼일의 미사 전례와 부활달걀을 성당에 갖다 놓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 정도까지 알아 듣는 거면 꽤 훌륭한 건가.
미사가 끝나고 성당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간식을 들고 여정을 나서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구경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날씨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세차게 비를 뿌려댔다. 날씨가 구리니 뭘 봐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사실 도시의 건축물은 꽤나 웅장했다. 날씨만 좋았다면, 짐이 더 가벼웠다면, 나의 몸 상태가 더 활기찼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도시의 곳곳을 걸어서 구경해 봤다.
애초에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메인스트리트로 가지 않았던 이유로 구시가지의 외곽부터 둘러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도심의 중앙부인 대성당과 마인강을 건너는 다리를 마주하게 된다. 아 이것이 내가 이 도시를 구글에서 찾아볼 때 보았던 풍경이 아니던가. 날씨 때문인지, 관광객 때문인지, 지나다니는 차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이유로 그 그림이 내가 보던 풍경이 아니다. 아 이걸 보려고 내가 더 몇 시간을 더 돌아왔어야 했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아직 후회하기는 이르다. 다리를 건너보도록 하자.
다리의 설명을 보니 독일에서 제일 존경할 인물들을 동상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인 듯하다. 카를대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나머지는 몇몇 성인인 듯하다.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와인 잔을 들고 다리에 서 있다. 여긴 독일 내 꽤 유명한 와인산지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한번 맛보기로 하고, 다리 건너편에 있는 카페 및 레스토랑으로 갔다. 안타깝게도 전망 좋은 곳은 내게 주어지지 않고 나는 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배정됐다. 와인과 슈니첼을 시켰는데 가격이 사악하다. 위치가 위치이니 감수해야 한다. 와인은 뭐 그냥 먹던 리슬링 같은 맛이었다. 독일 내 와인이 유명하다고 해봐야 개인적으로는 가성비 좋은 이탈리아 와인을 먹는 게 더 낫다. 가격도 더 합리적이고.
다리 위엔 성이 있다. 이곳은 지금은 행정구역 상 바이에른이긴 하지만, 예전엔 프랑켄, 프랑코니아 왕국이었다. 뉘른베르크도 마찬가지. 그런 이유로 그런지, 내가 살던 슈트라우빙을 비롯한 레겐스부르크, 그리고 뮌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뭔가 더 차갑다고나 할까. 이곳 출신 사람들이 바이에른이 아니라 프랑켄 출신이라고 하는 걸 떠올려 보면, 그들의 정체성은 지금의 행정구역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평지에는 시내가 있고, 강건너 반대편의 고지대에는 성이 있는 게 중세의 유럽 대부분 꽤 큰 도시와 비슷하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하이델베르크 등등. 높은 곳에 권력이 있다는 말처럼.
새로운 사실이라면, 프랑켄 왕국이 튀링겐 왕국과 비슷한 뿌리라는 점 등을 생각하며 독일 내 여러 행정구역과 그 뿌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성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건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와 구시가지의 풍경은 제법 볼만했다. 성을 내려와 다시 시내로 진입한다. 이제야 날씨가 차츰 개고 해가 뜨고 따뜻해진다. 하하 하필이면 왜 지금 그런단 말인가.
시내를 둘러보다 무료 전시 공간을 보는데, 2차세계대전 관련된 내용이다. 전쟁 막바지쯤, 영국 공군의 폭격이 이어질 때, 거의 마지막으로 폭격이 이뤄졌다는 내용의 전시로, 나치의 전쟁범죄는 단죄받아야 하지만, 민간인 살상은 잘못되었다는 취지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나치의 전쟁 범죄의 언급보다는 본인들의 희생만을 강조한 내용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인이 반성한다는 것도 60년대 후반에나 시작된 것이지, 그 전엔 그러지도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들이 떠오른다.
어찌됐든 시내의 90%가 파괴되었다고 하니, 그 피해를 구시가지의 많은 건물들이 현대적인 모습을 한 건축물과 도로를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더 감흥이 덜한지도 모르고.
돌아가는 길의 이곳의 유명한 와인 저장소를 지나가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그옆은 많은 이들의 병원이기도 하다. 이곳을 만든 이는 대학의 이름에도 있는 Julius Echter von Mespelbrunn (주교후, 가톨릭 주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로서의 위치를 겸임)으로,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제공했다는 설명이 있다.
화려한 Residenz와 비슷한 양식의 건축물로 이곳을 지나가다 보면 뢴트겐 기념관도 있다. X-ray를 발견한 뢴트겐, 그리고 태양 에너지 수업 때 들었던 태양 스펙트럼의 그래프를 해석한 Wien도 이곳의 교수였다. 전화기를 발명한 Bell은 이곳에서 박사 과정을 했다. 잘은 몰랐지만, 꽤 유명한 대학인가 싶으면서도 현재는 투자가 부족한지, 아님 2차세계대전, 전후 독일의 학계가 쪼그라들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독일 자국 학생들 위주로만 대학을 꾸려나가는 건가 여러 생각을 한다. 나는 또 생각한다. 혁신이 없는 대학의 미래는 어두운 게 아니겠냐고. 지금의 독일의 많은 사회의 문제점처럼 내겐 이 도시가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 날씨가 좋았다면, 아니면 내가 이곳을 더 애정 깊은 눈으로 바라봤다면 좀 다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느 도시를 사랑하기 위해선 어쩌면 시간이 조금 필요한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 정도로 사랑에 빠질 정도의 도시는 아니었다.
Würzburg를 지나 Karlsruhe로 향하는 길에 Neckarsulm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보니 거대한 냉각타워가 보인다. 느낌이 왠지 원자력발전소 같다. 찾아보니 역시 맞다. 작년 4월까지 가동되었던 독일 내 최후의 원전 중 하나였다.
예전에 앎이 부족할 땐, 봐도 잘 모르고 그 관심사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는데 많은 분야를 관심을 두고 궁금한 부분을 계속 파고 공부하다 보니 그 데이터가 그저 컴퓨터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도 남아있게 된다. 독일의 에너지 분야에 깊게 살피다 보니 보이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칼스루에에서 기차를 타고 이 긴 여행을 마무리했다. 2박 3일 간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49유로 티켓 덕에 완행 열차를 타고 이렇게 다니는 것도 꽤 불편하긴 하지만, 해볼법한 일이다. 또, 잘은 몰랐지만 이전까지는 꼭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사 빠져 술을 마시는 것도 가끔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리프레셔가 됐고 한 챕터를 마치고 다음 챕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여행에서 그렇듯, 내가 사는 곳이 얼마나 살만하고 좋은 곳인지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내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를 충실히 살아보자. 다음주에 맞을 부활절을 정겨운 나의 집에서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