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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13. 2021

수학, 한국인이 제일 잘하는 것

시스템의 차이

이곳에서 여러 가지 수업을 들으면서도 터무니없이 쉽게 느껴지는 과목이 있다. 수학이다.


내가 소싯적에 수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곳 대학에서 다루는 수학은 고등학교 수준이다. 수학적 귀납법부터, 수열, 급수, 기초적인 미적분 등. 물론, 그래서 조금 공학의 기반이 될만한 수학 수업도 수강신청은 했지만, 강의 언어가 독일어이기 때문에 아직 손을 못 댔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사실 엄청나게 쉬우면서도 하도 오래전에 한 것이라 긴가민가할 때도 있는데, 연습문제 푸는 시간에 가면 너무 간단한 수학적인 계산만 하면 되는 거라, 여기에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계속 듣는 이유라면, 다시 복습 차원에서 듣는 게 다시 머리를 말랑말랑 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니까. 또, 고교 수학하고 대학 들어가서 수학하곤 많이 달랐던 게 기억이 남지만, 한 문제를 풀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원리원칙대로 푸는 방식이 인상 깊다.


예전에 미 해군 이지스함에 탔던 게 기억이 난다. 연합 연습 도중에 저들이 문제 해결하는 속도를 보고, 저게 저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을 때도 있고, 조함도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세계 최강 미 해군을 보며, 한국 해군의 인적 역량이 훨씬 뛰어나다는 걸 새삼 느꼈달까. 그러던 와중, 그들이 일 처리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 주어진 프로토콜을 빠지지 않고 다 해낸다는 점이었다. 우리였다면 그냥 ‘했다 치고’ 넘어갈 일이었다면, 그들은 하나하나 빠짐없이 원리원칙대로 한다는 점.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라는 걸 짧은 시간에 느꼈었다.


이곳에 와서도 그런 점을 여실히 느낀다. 비단 수학 강의에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가끔은 너무 답답하고 이런 고구마 같은 코쟁이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보수적이고, 새로운 일에 대한 대응이 다소 느리고, 변화가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뭐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를 뿐이다. 예컨대, 규정이 있다면 지키는 것이 맞고,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다면 바꾸는 게 방법일 텐데, 이것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그래서 규정이란 건 사실 만들기도 어렵지만 이를 바꾸는 게 훨씬 더 어렵기에, 첫 단추를 잘 꿰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결국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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