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ufen, Bad Krozingen, Münstertal
나름 훌륭한 자전거를 가진 이후에도 매일같이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출퇴근과 도심 내 이동수단으로만 사용하기를 이제 거의 1년째. 그마저도 학교 가는 길이 15분 거리에서 이사 이후로, 3~4분 거리로 단축되었다가 새로 다니는 직장은 자전거로 2분이면 도착하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한참 흐리고 안개 자욱하거나 비바람이 몰려오는 독일 특유의 겨울 날씨에 우울감이 몰려오다가, 화창한 날씨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다녀와야겠단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렇게 처음 떠난 곳은 이 주변 와인산지로 유명한 Tuniberg.
Berg가 독일어로 산이라는 뜻인데, 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편도로만 12km 정도를 가는데, 그래도 오르막이라 꽤 버겁다. 가는 길엔 이 동네 특유의 조그만 시골마을들의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고, 그 조그만 언덕에 오르면, 저 멀리 검은숲과 프랑스 알자스의 산맥, 보스게스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와인밭을 따라 형성된 도로는 그야말로 자전거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그곳을 한 바퀴 쭉 돌고, 다른 방향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약 40km 정도 된다. 그렇게 두 번 정도하니, 새로운 코스가 궁금해진다.
이번엔 이곳으로부터 편도 20km 떨어진 Staufen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한다. 역시 화창한 날. 20km라는 거리도 거리지만, 초행길인 탓에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그야말로 시골스러운 길을 계속 지나다 보니, 목적지에 다다랐다. 도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생각보다 동네가 너무 괜찮은 것!
아기자기한 중세 도시 안에, 수많은 가게가 내가 사는 인구 23만의 프라이부르크보다 나아 보인다. 프라이부르크는 너무 관광화되었는가. 훨씬 좋아 보이는 물건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으니 눈이 돌아간다. 무엇보다 결혼 전,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구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중고 상점인데, 젊은 친구가 사장이다. 무얼 찾느냐고 하여, 5월에 결혼하는데 구두가 없다고 하니, 이것저것 보여준다. 구두 대부분이 서양인들의 발에 맞추어져 길이가 맞는 건 발볼이 안 맞았는데, 그중에 제일 멋진 구두가 찰떡처럼 잘 맞는다. 사장은 이 구두는 오스트리아 빈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거라며, 그래서 다른 구두와 뒤꿈치 마감이 완전히 통으로 되어 있는 걸 보여준다. 나는 예쁘긴 한데, 그럼 더 비싸지 않냐고 하니, 원래 1,000유로 넘는 걸 중고로 파니 450유로에 책정했는데, 네 결혼선물로 400유로에 내어준다고 한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 고민한다. 일단, 내 아내와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결혼한 남자들은 이를 다 이해하는지, 다음 주까지 예약해놓을 테니, 네가 다음 주에 안 나타나면 내가 아무에게나 팔겠지만, 그전까지는 내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는 독일어를 잘한다며 칭찬해줬는데, 젊은 친구가 아주 서비스 정신이 좋다고 느꼈다.
그렇게 그 가게를 떠나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아주 조그만 마을인데, 구시가지가 꽤 아름답다. 예전에 지열 발전을 위한 시추공을 땅속에 잘못 집어넣는 바람에 땅이 솟아오르는 바람에 역사적인 건축물에 금이 가 있다. 지열 에너지를 위험요소 등에 관해 설명할 때 들었던 수업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이외에도 이상하게 파우스트의 이름이 많다. 왤까, 고민했다.
기록에 따르면, 16세기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의 꾐에 넘어가, 연금술을 하다가 사고로 죽은 장소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워낙 독일 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인지라, 여러 소설 및 연극의 형태로 이어져 오다가 괴테가 본인의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연금술이라는 게 또 완전히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닌 게, 이곳 주변 검은숲에는 대규모 은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마을 주변 언덕 위에는 이곳의 영주가 살던 폐허가 된 성이 있다. 12세기부터 이곳의 영주였던 Staufen 가문은 16세기 중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소해달라고 파우스트 박사를 초대해 연금술을 하라고 했다고. 그 비극적인 결과가 파우스트의 삶이고, 이 가문도 이후 명맥이 끊긴 듯하다. 성은 17세기, 30년 전쟁 때 파괴되어 지금의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퍽 운치가 있다.
사실, 이 대규모 은광이 있는 곳, Münstertal은 800년 무렵 세워진 수도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라인강 동쪽에 세워진 최초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과 Staufen 영주와는 끈끈한 관계에 있었다고 하는데, 중세에만 해도 교회와 세속 귀족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으니, 그 모든 재정적인 지원을 해 준 건 은광이었던 셈이다. 주변의 검은숲 봉우리 Kandel의 사정과도 비슷한 게 그곳에도 St.Peter라는 어마어마한 수도원이 있고, 그 수도원을 만든 게 프라이부르크를 세운 가문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곳에도 검은숲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 Belchen이 자리하고 있다.
각설.
나는 이 은광이 있는 마을은 가보지 못하고, 옆동네 유명한 온천인 Bad Krozingen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시내에는 볼 게 하나도 없고, 온천 주변만 훌륭한 공원과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분위기가 바덴바덴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다음 주에 구두를 사는 김에 오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다시 Staufen을 찾았다. 친절했던 구두 사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다. 금방 구두를 사고, 옆에 있는 신부 드레스를 취급하는 상점을 찾았다. 중고 드레스를 취급한다고 하지만, 가격이 우리가 최초에 샀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랐다. 허허. 그래도 신부 구두는 잘 고르고 나와, 마을 안에 있는 와인 양조장에서 포도주를 두 병 사고 온천장으로 향했다.
온천장은 사실, 우리 동네에 있는 그것보다 더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피트니스 회원권 덕에 공짜로 물놀이를 하고 오니 기분이 좋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사실 이게 독일에선 다른 동네를 가는 성격인데, 돌아오는 길이 20분도 채 되지 않는 게 내 집에서 유성온천 가는 것과 별다른 바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어쩌면 나는 참으로 시골 사람의 삶을 사는 건가 싶으면서도, 출퇴근 걱정 없이 가까운 곳에서 쾌적하게 사는 게 참으로 복 받았다는 생각을 해보게끔 했다. 동네가 심심한가 싶으면서도 구석구석 우연히 돌아다니다 보면 다닐 곳이 참 많은 생각도 해보게끔 한다.
또 언젠가, 이제 이 큰 행사를 지내고, 재정적으로 조금 더 풍족해지면, 더 좋은 자전거와 함께 매일 새벽처럼, 아니 최소 매주 쫄쫄이 자전거복을 입고, 검은숲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끔 한다. 그런 운동 이후에 맥주 마시는 게 이들의 삶이니까. 그런 삶이 점점 다가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