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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1. 2022

독일에서의 입춘. 길고 긴 겨울의 끝?

독일도 입춘이 지나면, 날씨가 좀 풀리나. 오늘은 유난히 따뜻하고 밝은 날이었다.

잠을 설치고, 몇 달만에 일출을 보고, 꼭두새벽부터, 나 빼고 다 3학기 내지 5~6학기를 보내고 있는 독일인들의 무리 속에서, 독일어로 된 열역학 시험을 쳤다. 이 캠퍼스에서 제일 악명 높은 교수의 과목인지라 이 과목만 수차례 과락하여, 세 번, 네 번째 치는 애들도 있다. 시험 시작에 앞서 튜터가 문제를 친절히 설명해주는데 들으나 안 들으나 큰 차이가 없어 그냥 문제를 풀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며칠만에 벼락치기를 하여 시험지를 낸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하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외국인청에 가야 했다. 여권이 바뀌어서 이에 맞춰 거주허가증도 바꿔야 했기 때문. 이 때문에 10만원 정도 수수료를 더 내긴 했지만,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결국 돈을 내야지만 알 수 있는 게 많은 세상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돈을 더 내거나, 시간을 더 투자하면 해결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업무를 마치고 통계학 마지막 수업에 간다. 체계에 업로드된 1시간 남짓의 동영상을 보는데도 잠이 쏟아진다. 꾸역꾸역 듣고, 현장의 연습문제 풀이까지 마치고 돌아오니 갑자기 홀가분해졌다. 애들하고 잡담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머리 자를 시간이 되었다. 거의 다섯 달만에 머리를 처음 자른다.


분명 조금 잘라달라고 했는데, 많이도 잘랐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가 다 날아가고 보니, 9년 간 했던 머리와 같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싫던 머리가 이젠 덥수룩한 머리보다 좋다. 몇 개월간, 돈 아까워서 더럽게 자란 머리를 자르지 못하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진작에 자를걸. 그리고 생각보다 독일 미용사의 솜씨가 괜찮았다.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최소 두배 정도 가격이긴 하지만. 독일인 친구는 나보고 5년은 젊어보인다더니, 21살 같단다. 하긴 나는 스스로 ‘네가 노안이긴 하지.’ 했다.


오랜만에 운동하러 갔더니, 루마니안 축구 코치와 마주쳤다. 긴 Winter break를 마치고 첫 훈련인 토요일에 오냐고 물으며, 비시즌에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며 기특해한다. 집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맥주를 마시니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한동안 쳇바퀴 도는 생활이 갑갑하고 힘들었는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덕에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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