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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4. 2022

축구에 미친 독일인들

날이 정말 좋았다. 몇 달만에 축구하러 갔는데, 팀 동료들을 보니 반갑다. 인사를 좀 하고, 이내 스몰톡을 하는데, 역시나 내가 알아듣는 건 정말 한정되어 있고, 대화에 당최 끼기 쉽지 않다. 잘 대해주긴 하는데, 그들과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걸 느낀다.


오랜만에 온갖 훈련을 한다. 미니게임도 하는데, 훈련임에도 빡세다. 경합 상황이 있었는데 태클이 깊숙이 들어왔다. 발등을 꽤 강하게 밟혔는데, 그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괜찮아.’라고 하고, 속으로 ‘미친놈이 훈련인데 태클을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온갖 욕을 다 했다. 뭐, 그러고서도 한 시간 가까이를 더 뛰었다. 학교 애들이랑 살살 하다가, 여기 와서 하니 압박의 강도도 너무 강하고, 빡세게 몸싸움을 해서 쉽지 않다.


이내 운동 마치고 집에 가서 공부하려 했더니, ‘손, 경기 끝나고 분데스리가 볼 건데 안 갈래?’라고 물어본다. 그래서 ‘분데스리가를 직접 보러 간다고, 지금?’하고 물으니, 저기 클럽하우스에서 본단다. 클럽하우스에 가니, 오크통에 담긴 공짜 맥주가 있다. 공짜 맥주와 공짜 파스타까지, 오늘 계 탔다 하고, 잘 먹고 마시며 축구를 본다.


중계방송은 한 경기만 틀어주는 게 아니라, 주요장면이 있을 때마다 이 경기 저 경기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주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웬일로 바이에른 뮌헨이 승격팀을 상대로 몇  분사이로 세 골을 먹히고 4대 1로 지는 거다.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이야 뮌헨도 지는구나?’ 하고 웃으면서 말하니, 마주 앉아 보고 있는 축구 코치가 정색하며 ‘헤이 손, 어디 그런 말을 하냐.’라길래 바로 급공손하게 사과하니, 다들 ‘괜찮아.’ 하며 웃는다. 난 ‘맨날 이기다가 어쩌다 한 번 지는 건데, 뭐.’라고 생각했는데,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게 그렇게도 싫은가보다. 나로선 언더독이 챔피언을 시원하게 두들기는 모습을 보니 흥미로웠다.


또, 옆에 있는 친구한테 ‘여기 다 뮌헨 팬이냐’고 물으니까 ‘다 그렇지.’라길래 ‘주장은 도르트문트 팬이라는데?’ 하니까, 옆에 친구는 쾰른 팬이라고 한다.


또, 프라이부르크와 마인츠 경기가 잠깐 나왔는데, 어 ‘저기 한국 선수 두 명이나 있어.’라고 하니까 ‘정? 맞나 하면서 원래 뮌헨이었잖아 한다.’ 오 독일인이 정우영 선수도 알다니, 그리고 마인츠엔 누구냐고 물어서, ‘Lee, 한국인 절반 이상이 Lee, Kim, Park 셋 중에 하나야.’라고 했다. 무튼, 이렇게 한국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선발 출전하고, 독일인이 그 이름을 아는 것까지 참 국뽕이 차올랐다.


그러고 있는데 처음 보는 독일인이 여기 대학 다니냐고 말을 건다. 너도 그러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알고 보니 같은 수업도 몇 개 같이 듣는 비슷한 전공인 친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인 유학생 아냐고 묻는다. 그래서 잘 알지 하니까, 본인이 전 룸메였단다. 아, 나 ‘그 집 갔었는데, 그 독일인이 너였구나?’하고 여기 세상 좁다고 하며 맞장구친다. 어느새 경기가 끝나서, 난 집에 가겠다고 했다. 걔는 더 마시고 싶은 눈치였지만, 오늘이 처음인지라, 아는 사람도 없고 불편했는지 같이 간단다. 월요일에 또 훈련 올거냐고 묻길래, ‘공부할거야.’ 하니, 같이 축구하자고 조른다. 그래서 대충 알았다고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발이 퉁퉁 부어있다. ‘아 독일인 XXX.’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 난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다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이름도 거기서 거기다. 침 맞으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 아쉽다. 이럴 때면 집 생각이 난다.

팀에서 머플러를 만들어서 줬다. 독일어는 못해도, 유니폼도 있고, 팀의 일원으로 대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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