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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02. 2022

타지에서의 설날

설날. 떡국.

5년 간의 군 생활 중, 설을 바다에서 보낸 적도 있었고, 대기태세 혹은 당직 때문에 집에 가지 못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살았다. 그래도 배에서 혹은 직접, 떡국은 챙겨 먹었다. 당연한 일이니까.


작년에 오랜만에 전역을 앞둔 휴가 덕에 집에서 온전히 설을 쇠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한 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설은 오랜기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실질적으로 전역한 지도 1년.


기억조차 없던 유년 시절을 제외하곤 설을 외국에서 보내는 건 처음이다. 당연하게도 율리우스력, 양력을 쓰는 서양에서 음력 새해를 공휴일로 보낼 거라는 건 큰 착각이다. 대신 성탄부터 2주간 보낸 휴일이 우리의 설 명절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나는 이미 오랜 기간 쉬었음에도, 독일 공휴일은 공휴일대로, 한국 공휴일은 이것대로 쉬고 싶단 생각이 굴뚝 같다.


언제 한번 떡국 먹어야지 하던 와중에, 독일인이 우리 설날을 기념해 스테이크를 구워 먹잔다. 그래서 떡국을 같이 끓여주기로 했다. 독일인은 양파, 마늘 알러지가 있어, 국에 마늘을 넣지 못했다. 마늘이 없어도 국물 맛이 나려는지 걱정이 되는 와중에, 심지어 파도 ’Green Onion‘이라며 못 먹는다길래 혀를 차며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했다.


또, 독일인은 한국인은 설날 때 떡국을 먹고, 한 살 더 나이 드는 걸 기념한다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더니, ‘떡국 안 먹으면 나이 안 드는 거 아니냐며, 스물아홉이 된 소감이 어때, Old man.’이라고 물어본다. 순간 나이 먹은 걸 실감했다. 그동안 내가 짓궂게 했더니, 나한테도 짓궂게 하는 미친 독일인이다. 한참 어린 청년이 여기선 친구이자, 축구 게임 이겼다고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생각하면, 나도 참 어리게 살고 있구나 싶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지라, 이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마치 고교 시절처럼 농담 따먹기를 하며 저녁을 보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들과 떡국을 먹음으로써 진정으로 한 살 더 먹게 됐다. 설이라고 타지에서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 좋다.


비로소 2022년이 밝았다. ’Chinese New Year‘를 볼 때마다 피가 끓는 느낌을 받는데, 이들에겐 Lunar New Year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줬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Happy Lunar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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